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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More Equal Animals - 9장

제9장 - 이념들의 사이

“하나의 이념으로부터 비롯된 모든 사유와 행위들은 다른 이념들과 대립하는 과정 속에서 애초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경쟁 이념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영향을 받고 심지어 조종되기에까지 이른다. 그 이념의 핵심을 이루는 원칙이 (실제의 필요와 자체의 고민이 아닌) 다른 이념을 향한 반발에 의해 확립되어가는 것이다.” — 존 듀이

이 장은 나를 무정부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마르크스주의, 기업주의(corporatism)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근시안적 "-주의"와 이념의 부역자, 혹은 반대자로 성급히 단정하려는 사람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할애된 장이다. 서문에서도 설명했듯 나는 다양한 이념의 세계를 두루 탐험한 바 있고, 이 이념들이 저마다 내게 알려준 교훈을 바탕으로 나름의 이론을 구축했다. 그 이론이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의 전제가 되는 동시에 자연과 조화하는 진정한 민주주의에 관한 이론이다.

모든 이념은 공통적으로 정글의 법칙에서 출발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물"의 분배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현실에서 "권력"이 어떻게 분배되는지는 간과하고는, 자신의 권력을 기꺼이 사물과 맞바꾼다. 그러나 이들이 권력을 포기함으로써 얻는 사물의 가치는, 권력을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동안 창출할 수 있는 가치보다 훨씬 낮다.

내가 가진 입장과 가장 유사한 이념을 굳이 하나를 꼽으라 한다면 그것은 아마 자발주의가 될 것이다. 이 말은 곧 내가 분리 독립을 보장하며 피지배 계급의 합의 위에 형성된 커뮤니티 조직을 지지한다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원칙에 따라 통치되어야 한다는 보편주의(universalism)에 반대한다.

난 근본적인 자발주의자인 동시에, 널리 공산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적이라 여겨지는 체제들을 자발적으로 채택하라고 사람들을 설득하기도 한다. 이 장에서 나는 논리적으로 타당하고, 인간의 본성에 정합하며, 경제적 무지로 비춰지지 않으면서도 이 충돌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보고자 한다.

이념에 대해 논의하려면 우선 각 이념을 분명히 정의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내가 쓰는 책이므로, 각 이념에 대한 정의는 나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내린 정의에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괜찮다. 모두가 자기 나름의 정의를 내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내 추론 과정을 따라가는 동안만큼은 각자의 정의는 잠시 내려놓고 내 정의를 일단 수용해보기를 권한다.

무정부주의

무정부주의는 지배자가 아닌 규칙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이념이다. 앞서 사례를 들었다시피, 어떤 것을 규칙으로 삼을지, 그 규칙을 어떻게 강제할 것인지, 분쟁은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합의에 먼저 도달해야 한다는 점에서 지배자 없이 규칙만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정부주의는 힘 있는 자만이 권력을 가진다는 정글의 법칙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관점 역시 존재한다.

만약 무정부주의가 그 자체로 정글의 법칙과 동일한 것이라면, 사유재산권을 인정하고 분쟁 해결 절차를 확립하는 "평화 조약"에 자발적으로 동의한다 하더라도 우린 항시적인 무정부 상태에서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세계 무대에서 주권국가들의 상호작용이 무정부적이라는 점 역시 확인이 가능하다.

무정부주의자란 높은 수준의 "평화 조약"에 자발적으로 동의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이 명백히 동의를 표하진 않더라도, 이들의 행동은 이들이 대체로 전쟁보다는 평화 상태를 선호하며, 평화 조약을 향한 이들의 반대가 그저 이론적인 차원에서의 반대임을 나타낸다. 하지만 무정부주의자들은 법률 위반을 도덕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이들은 평화 조약에 동의한 바 없으며, 불필요한 문제가 불거지지 않는 선까지만 서로 힘을 합할 따름이다. 보는 사람만 없다면 빨간 불에 직진해도 이들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들에게는 자신에게 유리하다면 도난, 살인, 파괴도 용인된다. 덜 극단적인 경우 이들은 정부의 규제나 세금을 회피하고자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무정부주의를 본다면, 정글의 법칙 아래에서 모든 물리적, 사회적 수단을 동원해 자신만의 규칙을 나머지 모든 사람에게 강요하는 모두가 무정부주의자이다.

마르크스주의 / 공산주의

마르크스주의를 먼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아래의 공산주의의 핵심 원리를 집대성한 게 바로 마르크스이기 때문이다.

  • 중앙 은행
  •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교육
  •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노동
  • 교통 수단의 국유화
  • 통신 수단의 국유화
  • 농업 및 산업의 국유화
  • 사유재산의 철폐
  • 모두에게 높은 세율 적용
  • 세습 철폐
  • 지역 계획

흥미로운 점은 미국(과 미국의 양당)을 포함한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이 공산주의의 원칙 중 거의 대부분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세계의 모든 국가가 중앙 은행에서 발행하는 화폐를 사용한다. 교육 역시 주 정부, 연방 정부에 의해 강하게 통제되고 있으며, DINO 당과 RINO 당 모두 큰 틀에서는 정부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교육에 대해 반대한다. COVID-19 "대유행"을 통해 우리는 전세계의 거의 모든 정부가 한결같이 우리의 일자리는 물론 우리가 옷차림까지도 통제하겠다고 나서고 있음을 똑똑히 확인하고 있다. 또한 미국 정부가 명도 소송(eviction)을 금지한 것은 미국민의 사유재산권에 대한 명백한 간섭이다. 지난 수십 년간 민간 자산 박탈에 의해 시민의 재산권은 침해되어 왔다. 모든 미국민은 연방 정부에 대해, 그리고 거의 모든 주에서 소득세와 상속세 납부 대상이다. 통신 수단에 있어서도 정부 차원에서의 간섭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도로, 항공을 비롯한 교통 수단 역시 그 실질적인 소유권을 명시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보유한 정부에 의해 강하게 통제되고 있다.

RINO 당이나 DINO 당의 지지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정부는 이미 국가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시민에게 일부 선택권을 "허락"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 정부는 이미 완전한 공산주의의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공산주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는 것은 RINO 당이나 DINO 당이나 마찬가지다. 세율 조정, 규제 강화 등의 영역에서 약간의 입장 차이만 있을 뿐이다.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 있더라도 차에 대한 통제권은 여전히 운전석에 앉은 사람에게 있다고 볼 수 있다. 언제든 운전대에 손만 올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부 역시 시민에 대한 공산주의적 통치권을 가진다. 원한다면 언제든, 무엇이든 통제할 수 있으니 말이다.

현재 공산주의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바탕으로 공산주의를 정의하는 것은 굉장히 제한적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100%의 준비율과 금으로 뒷받침되는 은행 정책을 가지는 중앙 은행도 가능하며, 정부 통제 하의 교육을 통해서도 프로파간다를 배제하고 비판적 사고를 가르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른다. (공산주의) 정부의 존재 목적은 재산에 관한 분쟁을 해소하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정부가 모든 재산에 대한 궁극적인 통제권을 가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함으로써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체제"라는 것이 공산주의에 대한 가장 정확한 정의일 것이다. 공산주의가 "원하는 결과"는 만민의 "생활 수준에 있어서의 평등"이다. 이는 코뮨 스타일의 주거 형태를 더 큰 스케일로 확장하자는 것이며, 개인의 이윤 추구를 근절하자는 것이다. 모순적인 것은, 공산주의를 주창하는 자들, “진취적으로” 공산주의 운동을 이끄는 리더들 중에도, 공산주의적 부의 재분배가 지배계급의 “사적 이윤” 증대로 이어진다는 사실, 인민으로부터 가져온 통제권이 곧 부에 대한 통제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나는 부의 자연적 파레토 분포를 완전하게(혹은 거의) 제거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에 대해 전적으로 반대한다. 이러한 모든 시도들은 결국 부의 불공평한 분배가 아니라 부 자체를 파괴해버리고 만다. 왜냐하면 이윤(소비하는 것보다 많은 가치를 생산하는 것)이야말로 생산 참여에 동반되는 리스크를 감당하게 만드는 유일한 동기이기 때문이다. 난 이러한 점에서 공산주의에 완강히 반대한다.

이 책의 제목은 조지 오웰의 책 <동물 농장>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동물 농장>의 동물들은 공산주의 체제 수립을 도모하며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농장의 권력을 장악한 돼지들이 어느덧 자신들이 내쫓은 농부와 똑같이 행동하기 시작한다. 농장의 동물들이 만든 헌법이 이들에 의해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들은 더 평등하다"로 곡해된 결과였다.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는 구절은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를 원했던 동물들의 최고 법칙을 모순에 빠뜨렸다. 어떤 동물이 더 평등하다면 애초에 모든 동물이 평등한 것은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에서나 오늘날 우리의 사회에서나, 모든 사람들은 법 앞에 평등하며 모두가 똑같은 권리를 가지기로 되어 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평등에도 정도가 있다는 말은, 두 동물 사이의 차이를 근거로 평등한 정도를 정하겠다는 말이다. "더 평등하다"의 반대는 "덜 다르다"일 것이다. 두 동물이 완벽하게 평등하다면 두 동물 사이에는 차이가 전혀 없을 것이다. “더 평등한” 동물들일수록 그 사이의 차이는 더 적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

공산주의의 문제는 코뮨이 "제 기능을 못한다"는 게 아니다. 공산주의 체제는 국가 수준에서 근본적으로 무장 상태(반 평화)를 지향하므로 두 명으로 이루어진 그 어떠한 코뮨도 백만 명 규모는 고사하고 천 명 규모의 코뮨으로도 유기적이며 자발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이 진짜 문제이다. 하나의 코뮨은 군사적 수단을 통해서만(정글의 법칙을 활용해서만) 국가 단위의 공산주의 체제로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공산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선, 다른 이상을 가진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수밖에 없다. 결국 공산국가의 인민은 경제적으로 "평등"할지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평등"할 수 없는 체제이다. 공산주의 체제는 절대 다수 인민에 대한 부의 절대적인 평등을 성취하기 위해 정치 권력의 극단적인 파레토 분포를 허용한다.

공산주의 체제는 권력의 극단적 집중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도 할 수 있다. 권력의 집중을 허용하는 모든 이념은 권력을 더 집중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결국 공산주의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 모순적이게도, 권력의 집중은 부의 집중을 야기한다. 왜냐하면 재산이란 것 역시 "배타적인 통제의 권리"라고 넓게 정의될 수 있다는 점에서, 통제력과 부는 실질적으로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사회의 인민들은 통치자의 “사유” 재산이자 "부"가 된다. 공산주의는 노예제와 거의 차이가 없다. 역사적으로도, 자신이 통치하는 인민에게 적용되는 법률과 규칙에 동일한 수준으로 구속을 받은 공산주의 집권층은 존재하지 않았다. 문서 상으로는 "통치자"가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이들은 "사회의 재산"에 대한 독점적인 사용권, 다시 말해 실질적인 사유권을 가진다.

이 책은 시민간 권력의 평등을 이룩하고 그 과정에서 부가 자연스럽게 분배될 수 있는 방법을 고찰하는 책이다. 모든 부가 인간의 노동으로부터 창출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권력에 있어서 평등한 인간은 자연스럽게 부에 있어서도 평등하게 될 것이다.

차트

위의 차트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부가 어떻게 분배될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차트에서 가로축은 사람의 수를 나타낸다, 세로축은 개개인의 "순 자산"을 나타낸다.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지배계급이 사회의 모든 부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며, 나머지 100명 중 95명은 사실상 부를 보유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체제는 공산주의 체제만큼 극단적이지는 않다.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시도가 있긴 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부의 집중은 나타나지만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비해 심하지는 않은 편이다. 결국 이 중 어떤 체제를 선택한다 하더라도, 최소 20%의 인구는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파레토 법칙에는 예외가 없으며, 여기서부터 벗어나려는 모든 시도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

사회가 가진 부의 총량은 곡선 아랫부분의 면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절반의 인구는 “부자들이 파이를 나눠준다면” 자신들의 삶의 질도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공산주의에서는 지배층을 제외한 절대 다수가 점점 더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게 된다. 곡선 아래의 면적이 쪼그라든다는 뜻이다.

사회주의

사회주의는 순화된 버전의 공산주의로 널리 이해되곤 한다. 마르크스주의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역시 정부가 모든 것에 대한 전적인 통제권을 가진다. 하지만 이 통제권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있어서 두 이념은 차이를 가진다. 사회주의 체제의 통치자는 파레토 분포를 인위적으로 납작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가장 부유한 계급과 가장 가난한 계급 사이에 존재하는 부의 간극에 제한을 두고자 한다. 물론 지배계급은 이러한 제한에 대체로 면제된다. 또 이들이 다른 인민의 부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은 이들이 다른 인민보다 더 큰 권력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을 뜻한다. 다양한 “사회적” 프로그램과 안전망을 활용해 "삶의 부담을 분담하자"는 것이 사회주의의 핵심이다.

나는 다수로부터 취해서 소수에게 나눠주는, 혹은 반대로 소수에게 취해서 다수에게 나눠주는 모든 체제를 사회주의 체제라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는 모든 정부가 본질적으로 사회주의 집단이다. 모든 정부는 국방, 자연 재해, 고령화, 의료 등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을 사회로부터 거둬간다. 경찰 및 감옥의 운영, 은행의 파산에서 발생하는 비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기업과 유한책임회사 역시 사회주의적인 성격을 가진다. 이들은 소유주의 책무를 제한하고 이 책무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일반 시민에게 전가한다. 모순적이게도 대부분의 사회주의자들이 기업을 자본주의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의 법인격은 이윤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수단이다. 특허 개념 역시 모두에게서 권력을 가져가 이를 “발명가”, 혹은 독점 소유주에게 넘긴다는 점에서 그 본질 상 사회주의적인 개념이다.

구성원들의 참여가 자발적인 한 나 역시 모든 사회주의적 사회 형태에 반대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사회주의적 조직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만한 충분히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자발적 보험 상품과 공제 조합이 큰 시장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서 증명된다. 사회가 주는 혜택을 받고자 한다면 개인도 뭔가를 포기해야만 한다. 정글의 법칙 아래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사회주의의 문제는 그것이 군국적 공산주의로 발전하는 경향이 있다는 데 있다. 사회주의 체제는 권력의 집중을 필요로하며, 한 번 집중된 권력은 공산주의 체제에서 극명하게 나타나듯 점점 더 집중되기 마련이다. 평범한 사람 중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엄밀하게 구분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위험 분산”, “비용 분담” 등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닐 수 있다. 사회주의가 가지는 가장 큰 위험은 도덕적 해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자본주의

자본주의는 국가가 아닌 개인 소유주에 의해 산업이 통제되는 경제, 혹은 정치 체제라고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혹은, 자본과 시장에 의해 운영되는 사회를 자본주의 사회라고 하기도 한다. 공산주의자라면 "이윤 창출"이 동기가 되어 움직이는 모든 것을 자본주의적이라 설명할 수도 있겠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가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왕성한 이윤 추구 행위를 보고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관한 논의에서도 살펴보았듯, 전세계의 모든 국가와 커뮤니티가 어느 정도 사회주의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기업 역시 겉으로는 자본주의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실상은 사회주의의 산물이다. 기업에 의한 통치를 말하는 기업주의(corporatism)란 말이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살펴보도록 하자.

자본주의는 그 어떠한 정부, 사회 조직도 없는 정글의 법칙 바로 위에 존재한다. 자본주의에서 소유권은 정글의 힘으로 보호할 수 있으며 이는 비공식 협정으로 강제된다. 만약 내 “사유” 재산이 커뮤니티의 합의에 따라 결정되고 커뮤니티 경찰, 법정, 감옥 등을 수단으로 집행된다면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유 재산이라 할 수 없다. 이것은 다만 커뮤니티가 일시적으로 내게 배타적인 통제권을 부여한 공공 재산일 따름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겉으로는 개인의 사적인 재산과 같은 성격을 가질지 몰라도, 바로 이 성격 자체가 사회주의적 사회 규약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다. 진정한 사유 재산은 정글의 법칙 아래에서 (사회의 합의 등에 의해 보장받는 것이 아닌) 자기 스스로 지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자본주의는 사실 정글의 법칙과 동일한 정도로 근본적이며, 그 위로 다른 체제들이 세워질 수 있는 기반과 같다. 한 왕국이 그 내부적으로는 사회주의적일 수는 있어도, 왕국과 왕국간의 무역은 자본주의의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

자본주의는 "금"을 가진자가 규칙을 정하는 체제라고도 말할 수 있다.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 체제를 포함한 모든 것은 전문화를 통해 존재하는 것이며, 그 자체로 정글의 법칙 아래에서의 재화와 서비스의 자발적인 교환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만물은 자본주의의 결과물이다.

자본주의에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그 체제가 얼마나 자본주의적 성격을 가지는지에 관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사회주의적 성격을 가지는지, 어떻게 실질적인 재산권을 집행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나는 재산권과 평화 조약을 동일한 것으로 본다. 보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진정한 재산권은 동등한 정글 파워를 가진 당사자간의 협상을 통해서만 발생할 수 있다. 재산권에 관해서는 뒷장에서 보다 면밀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자유주의(Libertarianism)

유한 책임과 법인격이 배제된 자발적인 무역 시스템을 설명하는 데에는 자본주의보다는 자유주의라는 개념이 더 유용할 수 있다. 자유주의 커뮤니티에서는 재산권이 (평화 조약을 통해) 사전에 정해지며, 이는 계약을 통해서만 양도될 수 있다. 자유주의 커뮤니티는 유실된 재산을 최대한 적법한 소유자에게 되돌려줌으로써 분쟁을 해결한다. “재산권을 사전에 정의하는” 절차와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가 커뮤니티의 합의에 의해 정해진다는 점에서 자유주의도 일부 사회주의적 성격을 가지지만, 이 정도의 공통점만 가지고 두 이념이 같다고 이야기해선 안 된다.

자유주의는, 상대에게 먼저 폭력(혹은 협박)을 행사하는 것을 금지하는 동시에, 경우에 따라선 폭력적 수단으로 “내” 재산을 지키는 것을 허용하는 불가침 원칙을 따른다. 자유주의가 봉착하는 첫 번째 어려움은, 재산권과 분쟁 해소 절차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에 관한 당사자간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있다. 또한, "위기(endangerment)"와 "공격(aggression)"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도 논쟁이 있을 수 있다. 총구를 들이대지만 (협박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발포는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공격인가? 상대에게 총구를 들이댄 상태에서 러시안 룰렛을 돌릴 것을 강요한다면 이것은 공격인가? 음주 운전은 공격인가? 누군가에게 감기를 옮긴다면 이것도 공격인가? 총이 발사되고, 차에 부딪히고, 사람이 실제로 감기에 걸려야만 공격인가?

자유주의(libertarian)적 신념에 깊이 심취해 있는 사람들은 사회주의의 낌새가 조금만 느껴져도 큰 반발심을 갖는다. 이런 사람들과는 평화 조약을 체결하기가 어렵다. 자발주의(voluntarist)는 대체로 자유주의의 원칙을 지지하지만, 이들은 사회주의적 규약에 더 열려있다.

민주주의

이 책은, 사람들(혹은 조직)의 합의를 통해, 그룹의 구성원들이 한 마음으로 움직일 수 있고, 권력의 뺏고 빼앗김 없이도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자발적인 절차로서의 진정한 민주주의에 관한 책이다. 민주적 정부란 분리 독립의 권리가 보장된 개인들의 합의를 바탕으로 구성된 정부를 말한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에서 가능한 모든 것들은 진정한 민주주의에서도 가능하다. 진정한 민주적 사회주의에서는 권력이 엄밀하게 분산되지만, DINO식 사회주의/공산주의에서 권력은 극단적으로 집중된다. 두 체제 사이의 결정적 차이는 여기에 있다.

투표를 통해 있는 자로부터 부를 가져가 없는 자에게 나눠줄 수 있다는 사실을 시민들이 자각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공산주의로 변하고 말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난 이것이 DINO 체제에 대해서만 사실이라 믿는다. DINO 체제는 파벌주의를 부추기고 분리 독립에 극렬 반대하면서 진정한 민주주의의 원칙을 위반하기 때문이다. 만약 부자들에게 언제든 분리 독립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다면, 이들을 부당하게 겁박했던 민주주의 커뮤니티는 그 안에서 가장 부유한 시민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분리 독립이 가능한 부자에게서 부당한 방법으로 부를 빼앗는 행위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과 같다. 모순적이게도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주장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이들의 상대적 권력과 부를 증가시키리란 것을 이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자유주의자들은 소수자들이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근거로 사용한다. 동시에 자유주의자들은 제3자가 제안하는 "규칙"에 대한 협상 당사자들의 자발적 준수가 수반되는 중재에 대해서는 찬성한다. 여기서 핵심은 양자가 그 절차에 합의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민주주의는 다자간 분쟁 해결 절차이다. 일부가 그룹의 결정에 반대하더라도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행동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 낫다.

개인의 자율성과 권력은 보장하면서 집단의 협업은 촉진시키자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이다. 개인의 권력은 분리 독립의 권한과 능력을 통해 보장될 수 있다. DINO 체제는 시민에게 정치적 권력을 주는 척하며, 실은 그것을 빼앗아 지배 계급에게 나눠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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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나의 현실, 사회에 대해서 한번 글과 지금을 비춰 보게끔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 글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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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 - Ism Schism :+1: :+1: :+1: :+1: :+1: :+1: :+1: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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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9장까지 왔네요. 매번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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