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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More Equal Animals - 10장

제10장 -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경제학과 게임 이론은 인간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인센티브를 탐구한다. 인센티브의 종류에 따라 사람의 행동과 그에 따른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누군가에게 다른 누군가를 해칠 만한 동기가 주어지는 상황은 피하면서 모두가 동일한 목표를 향해 움직이게끔 만드는 인센티브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누군가에게 다른 누군가에게 손해를 끼칠만한 동기가 주어진다는 것, 이것이 바로 도덕적 해이다. 그 결과가 그 상황 안에서 상호작용하는 개인들의 "도덕성"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만약 모두가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인센티브 구조가 올바르지 못하다면 당사자들의 사물 인식과 가치 판단에 악영향을 줘 좋지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여기서 "도덕적 해이"란 궁극적으로는 사람마다 정의하기 나름인 "도덕"에 관한 것이기 이전에,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도 불사하는 의사 결정에 관한 것이다.

도덕적 해이에 대한 대비 없이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없다. 방향 설정이 잘못된 인센티브는 정직하고 청렴한 사람들마저 서로 등을 돌리게 만들며, 나아가 모두에게 해를 끼치는 구조적인 부패로 이어질 수 있다. 타인과 계약(혹은 평화 조약)을 맺는 중에는 이러한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해, 상대가 나를 배반할 유혹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좋은 건 한쪽이 취하고 그 비용은 다른 한쪽이 지불하는 구도에서 도덕적 해이는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출장비 전액을 회사에서 지원받아 출장을 가게 된 당신에게 상사가 저녁을 사주겠다고 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당연히 당신은 동네에서 가장 맛있고, 양도 가장 많은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대접받고 싶을 것이다. 이 경우 맛있는 식사가 가져다주는 이득은 당신이 취하고, 그 비용은 당신의 상사가 부담한다.

당신이 선한 사람이라 일부러 평소에 먹는 평범한 메뉴를 먹기로 결정한다 하더라도 도덕적 해이는 발생한다. 경제학자의 눈으로 본다면, 가치는 실제 실천과 의사 결정을 통해서만 발생한다. 배움이 노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말로는 주장하더라도, 공부를 하는 대신 매일 TV나 보기를 선택한다면 실제로 이 사람이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은 배움이 아니라 노는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도 마찬가지로, 상사가 사주는 것이 아니었더라도 내 돈 주고 스테이크를 썰었을 거라고 우리가 입이 아프도록 말해봐야, 실제로 이것이 현실에서 관측되지 않는 한 우리의 주장은 입증될 수 없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가서, 각자가 전체 음식값의 n분의 1을 지불하기로 한 경우에도 비슷한 일은 벌어진다. 평균값보다 더 비싼 메뉴를 주문한 사람은 이득을 보겠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손해를 본다. 자연스럽게 모두가 평균값보다 더 비싼 메뉴를 먹어야겠다는 유혹에 빠지며, 그 결과 모두가 비싼 메뉴를 주문하게 된다. 만약 같이 밥을 먹기로 한 그룹이 무작위로 선정된, 이번 말고는 앞으로 같이 밥 먹을 일이 없을 낯선 사람들이라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이들은 자신이 먹은 메뉴에 대해 각자가 지불하는 경우에서보다 훨씬 많은 돈을 쓰게 될 것이다.

매주 친구와 만나 저녁 식사를 하는데, 그 중 한 명이 매번 가장 비싼 메뉴를 시켜 먹는다고 생각해보자. 이 경우 벌어질 일은, 더 싼 메뉴를 사먹던 친구들이 이 모임에 더 이상 참석하지 않게 되거나, 그룹 전체가 나서 더 비싼 메뉴를 시켜먹는 친구를 그룹에서 제명시키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다중 반복(multiple iterations), 평판(reputation), 자발적 멤버십(voluntary membership)을 활용하면 도덕적 해이를 큰 폭으로 줄일 수 있다. 다중 반복 없이는 평판은 파악될 수 없다. 자발적 멤버십 혹은 배제 없이는 남용에 대응할 수 없다.

식사에 초대된 모두가 동일한 금액을 지불한다고 생각해보자. 누군가는 좀 더 검소한 식사를 할 것이고, 누군가는 좀 더 사치스러운 식사를 할 것이다. 첫 번째 식사의 결과를 살펴본 후, 앞서 검소한 식사를 했던 사람들은 식사 비용이 좀 더 “공정하게” 배분될 수 있도록 두 번째 식사에서는 좀 더 사치스러운 메뉴를 고를 것이다. 이는 두 번째 식사의 평균 비용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세 번째 식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악순환은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메뉴를 고를 때까지, 혹은 누군가가 더 이상 밥값을 지불할 수 없게 될 때까지 반복된다.

더 이상 자신의 밥값을 지불할 수 없게 된 사람 중에선 다른 누군가에게 식비를 대신 내달라 부탁하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 만약 그룹이 각자의 능력에 따라 이 사람의 밥값을 나눠 내주기로 동의한다면, 식당의 모든 음식이 동날 때까지, 혹은 그룹 안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도 더 이상 낼 돈이 없을 때까지 도덕적 해이가 그룹의 낭비를 부추길 것이다. 그룹 중 누군가가 들고 일어서서 "낭비가 너무 심하잖아요!"라고 외칠 수도 있겠지만, 그룹은 여전히 남 좋을 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내 몫을 챙길” 것인가 사이의 딜레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혼자서 천 원 더 싼 메뉴를 시켜먹어봤자 실제로 아끼게 되는 식비는 백 원 남짓이라면 누가 더 싼 걸 먹고 싶어 하겠는가? 그룹의 규모가 커질수록 도덕적 해이 역시 커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회원이 100명인 커뮤니티 클럽이 식당에서 일요일 저녁마다 회식을 한다고 해보자. 계산상의 편의를 위해 레스토랑은 10인용 테이블 10개를 마련해 이들을 맞는다. 최종적인 식비는 테이블별로 균일하게 지불하며, 회원들은 어떤 테이블에 어떻게 모여 앉을지 선택할 수 있다. 이러한 규칙이라면 검소한 회원들은 여러 테이블에서 환영 받을 것이고, 씀씀이가 헤픈 회원들은 기피 대상이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회원들은 자신이 지불하게 될 음식값의 경제적 타당성을 따져본 후 이에 따라 모여 앉게 될 것이다. 어쩌면 선택할 수 있는 메뉴 가격에 상한선을 두기로 합의를 보는 테이블도 있을 것이다. 이 상한선은 회사가 직원의 출장 예산을 일일 기준으로 산정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렇게 상한선을 두는 경우 개인의 소비는 결국 이 상한선에 수렴할 것이다. 덕분에 과도한 낭비는 발생하진 않겠지만, 회원들의 메뉴 선택 과정에는 경제적인 손익 계산이 배제된다. 더군다나 이러한 상한선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회원들의 식사 만족도를 인위적으로 낮출 수도 있다.

회원을 더 작은 그룹으로 나누면 낭비는 더 큰 폭으로 줄일 수 있다.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외식을 할 때 가장 낭비가 적은 경우는 물론 각자가 자기가 먹은 만큼만 내는 경우이다. 하지만 비용을 분담하기로 하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돈을 쓰기” 시작하며, 이러한 도덕적 해이로 인해 전체 비용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진다.

꾀가 많은 레스토랑이라면 테이블별로 식비를 그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n분의 1로 계산해 지불해야 한다는 규칙을 정할 것이다. 손님들을 도덕적 해이 상태로 몰아넣어 이득을 보겠다는 심산이다. 물론 경쟁이 치열한 외식 업계에서 이런 레스토랑은 손님의 선택을 받지 못해 결국 도태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가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것이 레스토랑과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 "가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선택지가 성립할 수 없는 정부와 정부 서비스의 문제라면 어떨지 상상해보라!

보험

발생 가능성이 낮은 사고의 리스크를 모두가 동일하게 분담하자는 것이 보험 제도이다. 낙뢰 사고의 리스크를 분담하기 위해 버지니아 주민들이 모여 보험에 든다고 해보자. 해마다 백만 명 중 한 명 꼴로 낙뢰 사고를 당하고, 여기에 대한 보험금으로 1백만 달러가 지급된다면, 낙뢰 보험을 가입한 사람들은 연간 1달러의 보험료를 지불하게 된다.

하지만 보험 가입자 중 일부가 버지니아를 떠나 플로리다로 이사를 가버리는 순간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 플로리다에서 낙뢰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버지니아에서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또한 보험 가입자 중 일부가 낙뢰 사고의 생존률이 90%에 이른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어쩌면 1백만 달러를 타내기 위해 벼락 한 번 정도는 맞아봐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이때도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 굳이 폭풍우가 쏟아지는 날을 골라 바깥에서 연을 날리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일 것이다.

모든 보험 시스템은 리스크 특성을 바탕으로 최대한 회원들을 분류해야 한다. 최대한 리스크를 줄이려는 사람들은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야 하고, 비바람 몰아치는 날에 굳이 연을 날리러 나가는 사람들에게는 낙뢰 보험 가입 자격을 주지 않아야 한다. 플로리다 주에 거주하는 사람은 버지니아 주에 거주하는 사람과 다른 그룹에 묶어 넣고, 더 많은 보험료를 징수해야 한다. 요컨대, 도덕적 해이는 자원을 공유하는 모든 집단에서 발생한다. 도덕적 해이를 원천 차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이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할 대응책이 필요하다. 모든 기업 구조가 이러한 도덕적 해이를 겪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의료 보험의 경우, 질병에 더 자주 걸리는 사람들은 보험료가 좀 비싸더라도 본인부담금 비율이 낮은 상품에 가입하길 원할 것이며, 질병에 좀처럼 걸리지 않는 사람들은 반대로 본인부담금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더라도 매달 납부하는 보험료가 싼 상품을 원할 것이다. 본인부담금의 존재로 인해, 보험 가입자들이 스스로를 저위험군, 혹은 고위험군으로 "자가 분류"한다는 것이다. 병원비의 1%만 본인이 내면 되는 사람들에서보다, 병원비의 절반을 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비용 절감이 더 큰 인센티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가 분류"는 결국 허약한 사람들에게 보험료 부담을 과중시키므로, 보험 회사는 피보험자의 소속 고용주 등와 같은 다른 방법으로 가입자를 분류해야 한다. 커뮤니티의 주간 회식에서 회원들을 자기 스스로 같이 앉을 사람을 정하는 대신, 10명 단위의 무작위 그룹으로 분류한다고 해보자. 이때 개인이 지불해야 할 음식값은 그룹을 나누지 않았을 때 지불해야 할 음식값에 수렴할 것이다. 각 그룹의 평균 낭비벽이 “무작위” 분포를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한 커플이 같이 외식을 하고선 각자가 그 비용을 반반씩 지불한다고 해보자. 이 경우 한 사람이 부담해야 할 금액은 어쨌거나 총 비용의 반이 되므로 한쪽이 신나서 터무니 없이 비싼 음식을 먹을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100명의 사람이 모여 n분의 1로 식비를 계산할 경우, 한 사람이 지불해야 할 비용은 전체 금액 대비 1%밖에 되지 않으므로, 총 외식비가 엄청나게 불어나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본인부담금은 보험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를 "더 작은 그룹"이란 경제적 조건을 재현함으로써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보험 회사가 수익을 발생시키고자 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의료 서비스에 1달러가 지출될 때마다 그 중 10%를 가져가는 보험 회사는, 말하자면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에게서 n분의 1로 음식값을 받아가는 레스토랑 주인과 같다. 이들은 테이블 하나(리스크 풀 하나)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앉히고, 보장 질환의 숫자를 최대한으로 늘리고자 할 것이다. 보험 회사의 사주에게 가장 이상적인 그림은, 모든 가입자를 모든 질환과 치료를 보장하는 하나의 거대한 그룹에 몰아넣는 것이다. "비영리"로 운영되는 보험사라고 해서 직원 없이는 굴러가지 않으며, 이들도 고용된 직원에게 정년 퇴직과 높은 봉급을 보장하고 싶을 것이다.

도덕적 해이로 이득을 보는 것은 비단 보험 회사 뿐만이 아니다. 의사, 제약회사, 의료기기 제조사 역시 서비스 수요의 증가로 인해 이득을 본다. 이러한 도덕적 해이에 대응하기 위해, 어떤 서비스에 가격을 얼마로 책정할지, 누구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지를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보편적 의료 보험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는 도덕적 해이를 악화시킬 뿐이다. 이 경우 좋은 걸 취하는 쪽은 공무원이고, 선택된(혹은 거절된) 치료의 비용과 그 결과 치러야 하는 쪽은 우리다!

보험 회사에게도 과잉 청구, 과소 보장 등으로 리스크에 대한 가격을 의도적으로 올바르지 않게 책정할 동기가 충분히 있다. 지급된 보험금과 징수한 보험료 사이의 차액을 챙기는 것이 허용된다면 보험 회사로서는 보험금을 최대한 적게 주는 것이 유리하다. 보험금 청구 절차에 대한 심사가 보험 회사 내부에서 진행된다면 부당한 지급 거절의 여지가 생기므로 이는 공정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업튼 싱클레어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뭔가를 모르고 있는 것에 대한 대가로 봉급을 받는 사람에게 그 뭔가를 이해시키기란 어려운 일이다!” 도덕적 해이는 무의식의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우리의 뇌는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보기 싫은 것은 보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다. 우리는 우리 안의 도덕적 해이를 보고자 하지 않는다. 도덕적 해이로부터 이득을 취하는 쪽이 우리일 때는 더욱 그렇다. 우린 우리 자신의 부패와 편견을 보고자 하지 않는다. 아무리 성찰과 훈련을 해도 결국 편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린 우리 자신이 짠 게임의 인센티브 구조가 만들어낸 교묘한 편견에 까마득히 말려들어 있다.

도덕적 해이와 민주주의

기존의 정부는 모두가 음식값을 n분의 1로 지불하고 있는 레스토랑과 같다. 정부가 하나의 보험 상품이라면, 그것은 정의를 수단으로 모두의 삶, 자유, 재산을 보호하는 보험 상품이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민주주의란 누구에게 이 "보험 회사"의 경영을 맡길 것인지, 누가 분쟁을 심사할지, 어떻게 청구를 배상할 것인지를 시민이 선택하는 절차여야 한다.

공산주의는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메뉴를 시킬 수는 있지만 그 값이 동일하게 손님의 월급의 90%인 식당과 같다(하지만 생산량이 너무 적어 결국 시킬 수 있는 메뉴가 없는 식당이기도 하다.). "사회주의"는 손님이 자기가 버는 돈의 50%는 레스토랑의 식비로 쓰고, 나머지 50%는 사회 전체에 배급되는 공짜 배급식량의 유지비로 내는 것과도 같다. 자유주의는 각자가 자기가 먹은 것만큼 돈을 내면 되고,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자발적으로 음식값을 지불해 줄 수 있는 식당이다. 도덕적 해이의 관점에서 본다면, 공산주의가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 자유주의가 왜 그나마 경제적으로 더 나은 체제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통해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데에는 복잡 미묘한 어려움이 따른다. 정부에서 직책을 맡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도덕적 해이의 영향 아래에 놓여 있다. 다른 시민의 돈으로 운영되는 것이 정부이기 때문이다. 정부 지출이 삭감되면 공무원도 감소한다. 이해 충돌이 줄어들면 뇌물을 주고 받을 기회도 줄어든다. 양당제가 사라지면 누군가는 권력과 영향력을 잃을 것이다.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면 선거에서 승리할 확률이 낮아진다. 전쟁에서 이득을 보는 이들에게는 평화가 오히려 불편한 단어이다. 마찬가지로 의료 서비스를 통해 이득을 보는 이들에게도 시민의 건강은 달가운 것이 아니다.

투표에서도 도덕적 해이는 발생한다. 51%의 승자가 49%의 나머지에게서 모든 걸 빼앗아 갈 수 있다면 말이다. 우리는 이미 그룹 규모의 축소, 반복, 그리고 평판이 도덕적 해이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나아가 자발적 멤버십과 그룹으로부터의 배제 권한은 평판 효과를 강화시키고 도덕적 해이는 완화시킨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 방식으로 스스로를 조직한다. 반면 DINO는 도덕적 해이를 최대한 강화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조직한다. 도덕적 해이가 DINO의 지배 계급에 이익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DINO 정부는 고객의 도덕적 해이를 극대화해 그로부터 이윤을 창출하고자 하는 식당과 같다. 사회 조직이 직면하는 도덕적 해이가 클수록 이로부터 발생한 “문제를 해결할” 정부에 대한 요구도 커진다. 정부의 도덕적 해이가 점점 더 큰 도덕적 해이를 몰고 오는 이유이다.

참된 민주주의의 원칙에 입각한 좋은 정부는 모든 영역에서 도덕적 해이를 근절하고 최소화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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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 - Moral Hazard :+1: :+1: :+1: :+1: :+1: :+1: :+1: :+1:

글 잘 읽었습니다. . .도덕적 해이를 감안해서 만들어질 eos생태계의 성공을 보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