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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More Equal Animals - 6장

제6장 - 무작위성의 힘

정치에서 무작위성이 가지는 힘은 굉장히 저평가되어 있다. 국가의 운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확률"에 맡긴다는 생각이 굉장히 위험해보일 수는 있겠으나, 사실 무작위성이야말로 정치가 특정 정당에 휘둘리는 것을 막고 현 체제에 과도한 편향이 일어나는 것을 막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컴퓨터 시스템은 다양한 알고리즘으로 무작위성을 활용하며, 이를 통해 최악의 시나리오, 과최적화(over-optimization)를 방지하고, 국부 최소(local minimum)에 갇히는 것을 막는다. 비트코인도 신규 거래 기록을 누가 갱신할지를 결정하는데 있어 무작위성을 사용하는데, 이런 무작위성을 통해 스스로를 검열과 조작으로부터 지켜낸다. 게임 역시 프랙탈과 무작위성을 결합, 실제 자연에 더 가까운 게임 내 세계를 창조한다. 생명체의 진화와 적응에 필수적인 다양성 역시 자연의 무작위성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무작위성 없이 생명 현상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렇게 탄생한 생명의 구조를 무작위적이라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작위에서 탄생한 생명에서도 우리는 지적 창조자의 존재를 믿게 만드는 질서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커뮤니티가 제 아무리 훌륭하다 한들 그 안에서 잘못이 발생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할 수는 없다. 무작위성을 활용한다는 것은 완벽한 계획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 다양한 소수 의견이 표현될 기회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만히 놔두면 끼리끼리 어울리면서 낯선 사람들을 기피하기 마련이다. 협업과 포용의 정신을 실천하고자 하는 커뮤니티라면 이러한 편가르기 본능을 극복하고 모두가 모두와 이야기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 무작위성은 이 지점에서 아주 유용한 도구이다.

파레토 법칙

모든 사회와 조직은 그 사회와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 기술과 탤런트를 가진 사람을 선호한다. 그 탤런트가 농구가 됐든, 철자법이 됐든, 글쓰기가 됐든, 선거에서 이기기가 됐든 상관없다. 그리고 기술의 분포는 파레토 분포를 따른다. 어떤 기술이 됐든, 같은 기술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는 소수의 실력자가 가진 역량이 나머지 사람들의 실력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나다는 말이다. 파레토 분포는 온갖 곳에서 발견된다.

  • 전체 중 80%의 결과값이 20%의 입력값에 의해 산출된다.
  • 전체 중 80%의 제품이 20%의 노동자들에 의해 생산된다.
  • 전체 중 80%의 콩이 20%의 콩깍지에서 나온다.
  • 전체 중 80%의 조류가 20%의 조류종에 속해 있다.
  • 전체 중 80%의 사용량이 20%의 기능에 집중되어 있다.
  • 전체 중 80%의 부를 20%의 사람들이 차지한다.
  • 전체 중 80%의 인구가 20%의 도시에 산다.

파레토 법칙은 90/10이나 70/30 비율로도 적용된다. 아무튼 핵심은 자연적으로 세상의 거의 모든 것들이 비균질적으로 분포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파레토 법칙은 재귀적이다. 20%의 버그가 전체 중 80%의 시스템 충돌을 일으킨다면, 4%의 버그가 64%의 충돌을, 1%의 버그가 51%의 충돌을 일으킨다.

80/20의 파레토 분포가 "정치적 영향력"에도 적용된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1%의 인구가 50% 이상의 인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다수결 민주주의에서 이는 이 1%에 사실상 그 사회의 모든 정치적 결정권이 집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90/10의 분포를 가정하면, 0.1%가 72%를 통제하고, 0.0001%가 53%을 통제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상위 200명이 가지는 영향력이 200,000,000명의 영향력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체스 실력이 곧 권력인 세계를 상상해보자. 이 세계에서의 대통령은 체스를 최고로 잘하는 체스 선수이다. 체스 실력은 파레토 분포를 따른다. 최고의 선수들이 평균적인 선수보다 월등히 높은 실력을 가진다. 이 사회의 권력은, 체스로 성공할 수 있는 실력과 자질이 엇비슷하게 뛰어난 사람들끼리만 돌려먹고 나눠먹을 것이다.

체스 경기와 마찬가지로, 선거에서 승리하는 데에도 다양한 자질이 필요하다. 진실이 아닌, 사람들에게 듣고 싶어하는 것만 들려줄 수 있는 자질. 가만히 있기보다는 타인을 지배하는 것을 즐기는 자질. 지킬 수 없는, 혹은 지킬 생각도 없는 말을 "공약"으로 포장할 수 있는 자질. 원칙과 소신을 따르기보다는 파벌/편을 가르는 자질. 장기적 계획보다는 단기적 사고에 능한 자질. 이러한 부정적인 자질도 체스나 다른 활동에 필요한 자질처럼 파레토 법칙을 따라 인구 중에 분포된다. 모집단이 커질수록 일반인들의 평균적인 실력과 능수능란한 정치인들(체스 선수들)의 실력 편차는 양극화된다.

전교생이 100명인 카운티 공립 학교와 전교생이 10,000명인 대도시의 사립 학교 중 어느 학교의 농구팀 실력이 더 뛰어날까? 0에서 100까지의 농구 실력이 모든 학생에게 무작위로 분포되고, 학교마다 10명의 선수를 선발해 농구팀을 만든다고 해보자. 전교생이 10,000명인 학교에서는 실력이 100인 학생들로만 이루어진 농구팀을 10개까지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교생이 100명인 학교에서는 실력이 100인 학생 한 명이 나오는 데에도 운이 따라줘야 할 것이며, 농구팀으로 선발된 개개인의 평균 실력은 95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농구 실력의 분포가 파레토 법칙을 따른다면, 1%의 학생이 가진 실력이 51%의 학생들이 실력을 합한 것보다 높을 수도 있다. 큰 학교에서는 실력이 100에 가까운 선수 10명으로 팀을 꾸릴 수 있겠지만, 작은 학교에서는 선수 한 명만 실력이 100에 가깝고 나머지 9명의 선수는 실력이 50 아래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된다. 이는 현실에서 증명된다. 학교가 작을수록 농구팀의 실력도 뒤떨어진다.

무작위성은 기울어진 확률 게임의 운동장의 수평을 맞춰줄 수 있다. 학교에서 무작위로 학생을 선발해 농구팀을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학교의 크기와 상관 없이 모든 학교의 농구팀의 평균적인 실력 수준은 50 안팎일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농구 실력 분포가 파레토 법칙을 따른다면, 모든 학교의 농구팀의 평균 실력은 10 보다도 낮아질 수 있다. 이를 지혜, 경제적 지식, 공정성 등 긍정적 자질이 필요한 게임에서가 아니라, 중상모략, 기만, 조작과 같은 "부정적인 자질"이 필요한 게임에 적용해본다면 어떨까?

국가가 커질수록 권력의 최정점에 서는 사람들의 비율은 점점 작아진다. 큰 학교든 작은 학교든 농구팀의 크기는 엇비슷하듯, 어떤 나라든 전체 인구와 상관 없이 대통령은 1명, 상원의원은 100명 남짓이다. 국가가 커질수록 정치라는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필요한 실력의 분포는 양극화된다. 반사회적이고 비도덕적일수록 이 정치 게임에서 승리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라고 본다면, 이런 사회에서 권력을 쥔 자들의 반사회성과 비도덕성도 인구 수에 비례해 높아질 것이다. 작은 학교와 큰 학교의 농구 실력 분포처럼 말이다.

무작위성이 기울어진 운동장의 수평을 어떻게 맞출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하나 더 있다. 국회가 입안하는 모든 법안이 무작위로 선정된 시민 100명 중 3분의 2의 동의를 얻어야만 통과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시민들의 뜻에 일치하지 않는다면 웬만한 법안들은 통과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런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민 선정 절차는 순수하게 무작위적이어야 하며, 선정된 시민들은 각 계층의 시민을 고루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무작위성을 활용할 수 있는 사례는 또 있다. 투표 용지에 누구의 이름이 먼저 올라가느냐도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이름이 투표 용지 상 가장 위에 올라가 있는 후보는 그 아래의 다른 모든 후보들보다 유리하다. 투표 용지 상 이름이 올라가는 순서를 무작위로 정한다면 이런 부당한 편익을 막을 수 있다.

대부분의 유권자들의 (합리적) 무지로 인해 보통의 선거에서 표 한 장이 가지는 실질적인 정보량의 수준은 동전 던지기가 가지는 정보량 수준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브레넌이 자신의 저서 <민주주의에 반대한다>를 통해 주장하는 내용이 맞다면, 보통의 유권자 한 명이 발생시키는 정보량은 동전 던지기 한 번에서 발생하는 정보량보다 작다. 양당제에서 승리한 후보와 패배한 후보 사이의 표차가 얼마나 적은지를 보면 이 주장이 대체로 틀리지 않다는 것이 드러난다. 오늘날의 선거는 때려 맞추기 놀이와 다를 바 없다.

10,000명을 무작위로 추출해서 진행한 설문 조사의 결과와 2억 명의 유권자가 참여한 투표의 결과 사이의 차이는 가급적이면 작아야 한다. 차이가 존재한다면 이 차이는 표에 담긴 유권자의 “열의”, “의욕”, 혹은 "가치"를 반영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투표에는 "비용"이 따르며, 이 비용은 투표의 결과가 왜곡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많은 이들이 "인두세(Poll-tax)"등과 같은 "투표 장벽(투표에 참여하기 위한 비용 및 접근성이 높아지는 것)"에 반대한다. 하지만 이 장벽은 결코 완벽하게 없앨 수 없다. 투표 장벽이 애초에 없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더 양질의 입력값을 골라낼 수 있는 인공 장벽을 만드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물론 이런 방식이 효과를 가지려면 예상되는 투표의 결과가 그 절차의 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 사회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방법이 양당제로 환원되면 사회구성원이 원치 않는 자질을 가진 사람이 선출되기 쉬우며, 양당에 모두 반대하는 사람들의 투표권을 실질적인 사표(死票)로 만드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하지만 더 다양한 후보군 중에서 무작위로 지도자를 선정한다면 사회에 다양성을 보장하고 거대 정당의 장기 집권 및 그에 따르는 권력의 비대화를 막을 수 있다.

지도자를 선정하는 데 무작위성을 활용하는 선례는 아미쉬 커뮤니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미쉬파는 권력을 추구하거나 지도자가 되려는 욕망을 허영과 부패의 근원이라고 본다. 우선은 커뮤니티가 익명으로 지도자 후보를 선정한다. 일정 횟수 이상 후보로 지명된 사람 모두에게 후보 자격이 주어진다. 이제 자격을 갖춘 후보들 중 지도자를 무작위로 선정한다. 작은 커뮤니티에서는 대개 3명에서 12명 사이의 인물이 후보로 선정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지도자로 선정된 사람과 그의 수행인들은 죽을 때까지 직무를 수행해야 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못할 경우 커뮤니티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지도자를 무작위로 "징집"하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거버넌스에서 활용되는 무작위성을 추첨이라고 한다. 추첨은 정부 우편물을 개인에게 발송할 때 사용되는 절차이다.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에서 추첨이란 개념은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으로 여겨졌다. 파벌(정당)주의를 막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안타깝게도 아테네식 추첨을 그대로 현재에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 책에서 되풀이해서 나타나고 있는 주제인) 합리적 무지란, 지식의 습득에는 비용이 따르니 그 활용도가 비용을 상쇄할 수 있는 지식만을 습득하는 데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합리적 무지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좋은 거버넌스와 튼튼한 경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적고, 여기에 대한 실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보다도 적다. 지금의 이 책을 통해 습득하는 지식의 가치는 이 지식이 삶에 미치는 영향의 크기에 한정된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 쓸모없는 이런 거버넌스의 기술을 배울 바에야 커리어 기술을 쌓는 것이 삶에 더 유익하리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합리적으로 무지한 시민들이 나머지 그렇지 않은 시민들의 발목을 잡지 않기만을 바란다.

인구 규모가 커질수록 순전한 무작위 추첨의 결과가 최선의 결과로부터 멀어지리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는 인구 절반의 실력을 합한 것이 상위 1%의 실력을 합한 것보다 낮다는 파레토 법칙을 생각하면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평범한 개인의 실력은 최상위 개인의 실력보다 현저하게 낮다. 국회의원을 무작위로 선정하는 것은 올림픽 국가 대표를 무작위 제비 뽑기로 선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 결과의 참담함에서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파레토 필터링"을 조금 활용한다면 순수한 무작위성의 이러한 한계는 크게 극복될 수 있다. 예컨대, SAT에서 중-상위 성적을 기록한 사람들 중에서 무작위 추첨을 한다면 어떨까. 이렇게 한다면 거의 모든 계층의 시민이 대표될 수 있는 충분한 크기의 표본 수는 확보하면서도 대부분의 잠재 후보는 탈락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추첨 과정에서 대표되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권력을 잡았을 경우 자신과 타인에게 해만 끼칠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민의 뜻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상위 1%나 10%의 실력을 가진 사람들을 가려내고, 이 중에서 지도자가 될 사람을 무작위로 선정해 권력의 정체와 구조적 부패를 예방하는 시스템이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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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 - The Power of Randomness :+1: :+1: :+1: :+1: :+1: :+1: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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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1: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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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막연하게 상위 소수의 사람들이 우리 아니 세계를 욺직이는데 일조를하고 관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대한 생각을 하게끔하는 장 인것 같습니다. . . 이런 고민과 사색을 하고 나아가는 eos 의 앞길이 흥미롭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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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장은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네요. 무작위 선택을 통해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려면 표본의 수가 충분히 많아야합니다. 국회의원이나 지도자 같은 규모가 작은 집단을 무작위로 선출 하려 한다면 반드시 최악의 지도자가 선출되는 경우도 염두에 두어야겠습니다.

오래 전 대학토론 방송에서 진중권씨를 상대로 대통령 선거를 제비뽑기로 해야한다는 주장을 펼친 학생들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