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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More Equal Animals -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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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 현 체재의 폭정(Tyranny of the Status Quo)

우리는 극심한 분열의 시대를 살고 있다. 정치적 양극화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미 의회의 지난 50년간 평균 수행지지도는 30%에 미치지 못한다. 절대 다수의 시민이 의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9/11 테러 직후 아주 잠깐의 시간을 제외하면 의회 수행지지도가 50%를 넘어섰던 적은 없다. 되돌아보건대 이 시기 이후 의회 지지도가 다시 하락한 것은, 테러 사건의 감정적 충격이 가라앉으면서 이때 의회가 취했던 조치들이 잘못되었음을 많은 사람들이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내가 보기에 정통성을 가진 정부라면 지지도가 적어도 70%는 되어야 한다. 이런 상황이 왜 이렇게 오래 지속되는 것일까, 우리는 여기에 어떻게 손을 쓸 수 있을까,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면, 현 체제를 우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정부의 본래 존재 목적

미국 헌법 전문(前文)은 정부의 본래 목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우리 미합중국 국민은 더욱 완벽한 연방을 형성하고 정의를 확립하며 국내의 안녕을 보장하고 공동의 방위를 도모하며 국민의 복지를 증진하고 우리와 우리 후손에게 자유와 축복을 확보할 목적으로 이 미합중국 헌법을 제정한다.” — 미합중국 헌법 전문(Preamble)

많은 미국 시민들은 현행 미합중국의 헌법은 국민 모두에 의해 동의된 바이며, 여기에 따라 정부의 목적과 한계가 규정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헌법은 이미 모두에 의해 동의된 바이기에 더이상 검증할 필요가 없다는 이런 현 체제에 대한 옹호는, 현행 헌법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검증할할 책임을 없애준다는 점에서 편리하고 유혹적인 빠지기 쉬운 함정일 뿐이다.

헌법이 정부의 이론적 한계를 결정한다는 데 찬성하는 사람들은 개헌을 통해 정부의 존재 근거를 재규정하자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낀다. 이 두려움은 오늘날의 정치인들이 헌법에 손을 대면 기존 헌법이 수호하는 시민의 권리가 훼손될지도 모른다는 데서 오는 합리적인 두려움이다. 나도 동의한다. 헌법 개정을 믿고 맡기기에는 지금의 정치인들의 철학적 정직성(integrity)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헌법 개정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정치인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대중에 의해 지지되고 있지 않다는 증거, 혹은 투표로 선출되는 정치인들이 구제불능의 수준으로 부패했다는 증거이다.

정치인이 구제불능의 수준으로 부패했다면, 헌법이 규정하는 정부의 구조가 이러한 부패한 인물들이 정부를 장악할 수 있도록 용인한 것이다. 반대로 정치인들이 정말로 민의를 대변하고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헌법이 다수 의견 위에 군림하는 소수 의견에 불과하다는 것과 다름없다.

이 중 어느 쪽이든,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 나가는 일에 저항하는 모든 사람들은 우리에게 현 체제의 폭정을 강요하고 있다.

라이샌더 스푸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느 쪽이건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우리 헌법이 정부가 현재 수준에 이르는 것을 용인했거나, 그것을 막지 못할 만큼 무력했다는 것이다. 이 중 어느 쪽이 사실이든 헌법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

의회의 수행지지도가 오랜 기간 평균 30% 수준에 불과하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자명하다. 우리의 헌법, 그리고 헌법이 규정하는 정부 시스템이 망가졌다는 것이다. 헌법이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음을 기록하는 책들은 수도 없이 쓰였다. 지금부터 모든 법률과 기존 정부 기관을 없앤 후, 헌법만을 가지고 완전한 백지 상태에서 국가 운영을 다시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과 똑같은 상황이 더 빠르게 찾아올 뿐일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생각한다면 헌법과 함께 정부의 온 시스템이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해 진다. 정부는 더 이상 시민을 대변하거나 섬기지 않는다. 하지만 왜일까? 지금의 정부를 무엇으로 대체해야 할까? 여기에 대한 합의는 어떻게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정당 정치의 어리석음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자신의 고별 연설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시스템 붕괴 현상을 이미 예견한 바 있다.

"우리 연방을 해칠 수도 있는 잠재적 위험 요소를 살펴보면, 남부와 북부, 동부와 서부 등 지리적 차이를 구실로 삼은 파벌의 조장이 큰 우려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지역간의 반목을 조장하는 자들은 각 지역 간에 이해관계와 견해에 큰 차이가 있다고 믿도록 충동질할 수 있습니다. 특정 지역에서 영향력을 획득하려는 세력이 쓰는 편법 중에는 다른 지역의 의견과 목표를 왜곡하는 수법이 있습니다. 이러한 왜곡에서 비롯되는 시기와 원한에 대해서는 아무리 경계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러한 시기와 원한은 형제애로 함께 뭉쳐야 할 사람들을 서로 남남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당이란 물론 그 취지 자체는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지만, 결국에는 교활하고 야망에 차 있고 부도덕한 자들이 시민의 권력을 가로채고 정부의 통치권을 찬탈하는 것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수단이 될 것입니다. 이런 나쁜 의도를 가진 자들은 정당을 이용해 스스로를 지배 계급으로 끌어올린 후, 그를 가능케 했던 바로 그 수단을 파괴할 것입니다." — 조지 워싱턴

현재 정치권을 보고 있자면 워싱턴이 틀리지 않았음이 분명해 보인다. 국가는 승자독식 시스템으로 분열되었다. 우리에겐 독자적 판단 능력을 가진 독립된 국회의원이 단 한 명도 없다. 모든 국회의원들은 모두 정당에 볼모 잡힌 채 독립적 개체로서의 분별력을 행사할 능력, 혹은 그럴 의사를 제거당했다.

2020년 미국 대선은 "반 트럼프"와 “찬 트럼프”, 차악과 최악, 멍청한 놈과 더 멍청한 놈의 싸움으로 전락했다. 이 선거가 미국에서 가장 학식 있고, 사려깊으며, 정직하고, 합리적이고, 공정하고, 양식있는 사람을 뽑는 선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하기 힘들다. 유권자에게 어떤 선택권이 주어졌는지를 보면 뭔가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당은 헌법적 정부의 장악을 위해 담합하는 개인이 모인 사적 조직이다. 그리고 헌법 입안자들이 처음 의도했던 권력 분립의 원칙은 이 담합에 의해 훼손된다.

암호화폐 생태계에서 활동하며 내가 얻은 교훈은, 사람은 근본적으로 부족적(tribal)으로 사고하며, 꼬리표를 붙일 수 있는 모든 것을 중심으로 이 부족이 형성된다는 사실이다. 특정 시점에 이르면 모든 것이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분열된다. 그리고 "우리"와 “그들” 사이의 간극을 극복하려는 모든 시도는 양쪽 부족(정당)에 모두에게서 불충으로 여겨질 뿐이다.

자연스럽게 정치인은 국가가 아니라, 자신에게 권력을 쥐어주는 부족에게 더 충성한다. 이것은 양심의 문제가 아니다. 한 부족은 그 부족원들을 모든 단위의 정부 기관과 반(半)자치적 관료 집단에 심어놓는다. 그 결과 국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건국 공신들이 역설했던 견제와 균형의 원칙은 훼손된다.

암호화폐 커뮤니티의 거버넌스에서 배울 수 있었던 교훈이 하나 더 있다. 닫힌 계(closed system)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블록체인 거버넌스 구조를 장악하기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블록체인 거버넌스 바깥에서 서로 담합한다. 가짜 계정을 만들고, 다른 사람의 토큰으로 투표하고, 커뮤니티 지갑의 돈을 부당하게 재분배한다. 커뮤니티가 규정하는 법과 그 바탕이 되는 정신이 어떻든 간에, 이들은 사적 이득을 위해서라면 정치인들이 법의 취약점을 찾아내듯 어떻게든 알고리즘의 취약점을 찾아낸다.

게임 이론은 거버넌스 등의 경쟁 상황에 대입할 수 있는 전략을 분석하는 수학의 한 분과이다. 메커니즘 디자인은 게임 이론을 활용해 원하는 결과를 산출하는 시스템을 설계한다. 내가 이 책을 쓰는 데에도 글로벌 블록체인 커뮤니티에 메커니즘 디자인을 적용하고 테스트해본 나의 경험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다. 좋은 디자인은 외부의 담합을 변수로 고려하지 않는 닫힌 계를 상정해서는 안 된다. 정당을 "불법화"해서도 안 된다. 애초에 정당이 형성되는 것이 불가능한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정당 정치의 비합리성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자. 초기 미국에서는 대선에서 2등을 한 사람이 부통령이 되었다. 트럼프와 힐러리가 나란히 대통령, 부통령을 하고 있는 그림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정당 정치에서 여론은 양극화될 수밖에 없으므로, 이런 제도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결과는 예수/사탄, 혹은 사탄/예수가 번갈아가며 대통령직과 부통령직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것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대통령/부통령 후보가 한 팀으로 움직이는 지금의 시스템이 정착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대선을 통해 선출되는 사람이 대통령과 부통령으로 국한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가? 그냥 모든 정부 인사를 승리 당의 충직한 꼭두각시들로 갈아치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말로 유권자들은 고집스러운 관료 집단을 이끌어 달라고 대통령을 뽑는 것일까? 이를 통해서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지켜지고 양당간 타협이 이루어진다고 우리는 흔히 믿는다.

하지만 루시퍼와 예수가 어떻게 타협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선"과 "악"의 타협이 가능이나 하단 말인가? 가능하다면 이 타협은 국민을 위한 타협인가, 아니면 “거룩한 영적 존재”(다시 말해 지배계급)을 위한 타협인가? 유권자들이 예수를 대통령으로 뽑았다면, 루시퍼와 그 졸개들은 열과 성을 다해 예수 정권을 흔들어야 하지 않을까? 차라리 루시퍼가 천국을 다스리고 예수가 지옥을 다스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

정당 정치 시스템 아래에서 모든 독립적인 정치인들은 무력화된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다수의 비선출 정부 인사들이 다수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에게 저항할 수도 있다. 거대 양당 중 한 쪽에 서지 않는 정치인에게는 변화를 일으키는 데 필요한 정치적 자원이 주어지지 않는다.

양당제에서 모든 숙의와 협상은 당 전체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각 당 지도부 사이에서만 이루어진다. 진짜 권력을 가진 자들은 대체로 커튼 뒤에 숨어 있으며, 선출되지도 않는다. 양당은 양당제를 강화하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손쉽게 의견 일치를 본다. 따라서 이 양당의 울타리 바깥에 있는 소수당 소속 정치인들이 후보자 명단에 오르거나 토론회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점점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말이 양당제지 이것은 사실상 일당제와 다름없다. 초거대 일당이 "좌"와 "우"로 나뉘어 권력 구조 자체에는 절대 영향을 미치지 않을 의제만을 두고 다투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최근 몇 년간, 선거에서 이기려면 빨간색과 파란색 티셔츠 중 하나를 골라 입고선 각 당이 규정하는 사적 거버넌스 시스템에 부역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론 폴과 버니 샌더스 모두 초기에는 경선을 치르기까지 각 당의 내부 절차를 활용해 큰 인기를 끌었었다. 하지만 공화당과 민주당의 커튼 뒤 실세들은 규칙을 제멋대로 바꾸고 이 둘의 후보 당선 기회를 “가로채” 갔다. 이것은 이 두 당이 당 내부 거버넌스를 어떻게 장악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뻔한 사례에 불과하다. 두 당이 "아웃사이더"들을 어떻게 찍어누르는지 보여주는 크고 작은 사례는 이 외에도 셀 수 없이 많다.

국가의 통치가 정당의 대선 후보 경선 절차에 저당 잡힌 이 상황은 비트코인의 통제권이 채굴 풀에 의해 중앙화된 지금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비트코인의 인센티브 구조에 반영되어 있는 게임 이론을 생각해보면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채굴 역량이 마이닝 풀에 집중되는 것은 논리적 필연이었다. 미국의 헌법 입안자들이 자신들이 만든 헌법이 정당 정치의 굴레에 종속되는 것을 의도하지 않았듯, 사토시 역시 이러한 결과를 의도하지는 않았다.

거대당은 진화를 거듭해 자신을 보호할 법안들을 통과시켜 나갔다. 냉소적인 이들은 이렇게 결론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경선이란 "시민"이 당의 주인이라는 환상을 심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에 불과하다고. 정당은 결국 사적 집단이므로, 당 내부 정치와 후보 선출 절차에 대해 공적 책임을 지우기 어렵다. 다른 대부분의 대안 정당들은 경선은 물론, 후보 선정을 위한 과정조차 치르지 않는다.

뒤에서 살펴보게 될 양당이 채택하고 있는 경선 절차에서는, 국민은 고사하고 당원의 의지마저도 제대로 대변되는 것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이것은 우리가 후보 선출 절차의 정당성에 대해 냉소적이냐 낙관적이냐, 관심이 있느냐 없느냐와 무관하다.

한 명의 유권자가 한 당의 후보 경선에만 투표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주도 존재한다. 청팀이냐 홍팀이냐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양당과 더불어 유권자 모두가 국익에 관심이 있다면, 유권자들은 양당의 경선에 모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당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유권자의 표에 반영되는 것은 국익에 관한 그의 관심이 아니라 그의 당파성이다.

심슨 가족의 한 에피소드가 이러한 부조리를 정확하게 꼬집고 있다. 호머는 양당의 대통령 후보가 모두 우주에서 온 외계인이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호머는 UFO를 국회의사당에 추락시키고 두 외계인의 민낯을 TV 생중계로 까발린다. 군중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한 외계인이 사람들을 조롱한다. “그래, 맞아. 우린 외계인이야. 그런데 너희들이 뭘 어쩌겠어? … 양당제잖아… 너흰 좋든 싫든 우리 둘 중 하나에게 표를 던질 수밖에 없어.” 웅성거리는 군중 사이에서 누군가가 얘기한다. “난 제 3당에 투표할 거야!” 이를 다른 외계인이 받아친다. “그러시든가… 네 표가 종잇조각이 되어도 상관없다면!” 결국 선거는 그대로 진행되고 사람들은 당선된 외계인의 독재 아래에서 노예로 살아가게 된다. 에피소드 마지막에 호머가 마지에게 말한다. “내 탓 하지마. 난 다른 외계인에게 투표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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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부 시스템은 변화를 주도할 능력을 시민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 존 F. 케네디는 이렇게 말했다. “평화적 혁명을 무력화 시키는 이들이 결국 폭력 혁명을 불가피하게 만들 것이다.” 애석하게도 현재의 양당제는 몇 가지 다른 요소들과 결합하여 변혁이 사실상 불가능한 사회 구조를 만들었다.

여기서 몇 가지 다른 요소라 함은 다음을 포함한다.

  1. 단일 정당이 모든 선거구를 독식하고 소수당의 영향력을 지워버리는 게리맨더링(선거구 조작)
  2. 인물에 대한 대중의 시선, 대중에게 제공되는 정보를 통제하고 담론을 장악하는 미디어
  3. 현직 프리미엄 (기 선출된 사람이 가지는 역량 우위)
  4. 유명인과 거물급 위주로 조달되는 선거 자금
  5. 통제된 토론회
  6. 정책이 아닌 인물 중심 선거
  7. 개표 부정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타나길 바랄 수는 없다. 이제는 현 체제 기득 세력을 향한 편향과 정당 내부자들의 부패가 개입할 수 없는, 국민 모두의 의견이 고려되는 민주적 절차를 도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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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1: :+1: :+1: :+1: :+1: :+1: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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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댄 한국인설이 진실인듯 하네요.

양당제의 문제에대한 내용들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되는듯 합니다.

이건 각 정당과 일반인들에게 널리 읽혀야할 것 같습니다.

물론 두 외계인들이 싫어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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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에 공부하다가 체제에 대한 고민까지 하게되는군여 그만큼 이 블록체인 기반기술이 저런 정치정 사상적 명제를 해결해줄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에 댄이 자기 이상을 코드로 실현 내지 현재 풀어내고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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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네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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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고개를 그덕이며 수긍하고, 누군가는 가슴 철렁이게하는 글들이 나열되는군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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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장을 읽고 2장을 읽고 있습니다. 댄 사상에 대해 그리고 이오스를 위해 열심히 읽고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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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제기 부분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지가 궁금해지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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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지는 화두가 단순히 코인이 아니라서 울림이 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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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의 심오함에 점점 빠져들게 되네요. 놀라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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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매우 흥미롭네요.
댄의 사상에 따라 이오스 커뮤니티가 어떻게 발전하게 될지 매우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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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대표님 감사합니다♥
노드원아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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