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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More Equal Animals -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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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 - 민주적 정의

민주적 합의에 도달한다는 것은 평화 조약을 위반하는 자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사회는 우선 규칙을 합의한 후, 무엇을 규칙 위반으로 볼 것인지 판별하는 절차, 그리고 당사자들을 어떻게 적절히 보상하고, 혹은 처벌할 것인지에 관한 절차를 합의해야 한다. 우린 이들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진정으로 민주주의적인 사회에 동참함에 있어서 현명하며 전적으로 독립적인 개인은 무엇을 두고 협상하게 될까? 일단 기억해야 할 것은, 현 체제가 우리의 시각과 관점을 흐리게 하거나 편향되게 만들게 두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계약이나 평화 조약에 서명할 때 "최악의 경우"를 꼭 염두에 둬야 한다. 만약 당신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죄수(혹은 사형수)라고 해보자. 당신을 감옥에 넣은 당사자들에게 어떤 인센티브가 있어야 이들이 당신의 누명을 벗겨줄 수 있을까? 무죄 추정의 원칙이 지켜지는, 진정으로 민주적인 사회에서 평화 조약을 협상할 때에는 이런 질문이 필수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결백이 증명되기 전까지 유죄가 전제되는 사회에서 당신은 평화 조약을 맺을 수 있겠는가? 참고로, 부정 명제를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사법 제도에는 세 종류의 이해관계자가 있다. 피해자(원고), 피의자(피고), 그리고 해당 사법 절차를 소화하는데 드는 비용을 부담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간의 인센티브의 불일치는 도덕적 해이를 발생시킨다. 책임소재 분산으로 인한 도덕적 해이로 발생하는 비용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는 사법 제도 운영 비용, 범죄에 의해 발생한 손해, 혹시나 모를 잘못된 판결의 비용을 모두 하나의 단일한 주체(또는 개인)이 부담하는 것이 이상적일 것이다. 이 경우, 해당 주체는 보험 가입, 포기, 수사, 기소, 처벌 및 교화 등 자신이 취할 수 있는 행동과 그에 따른 결과를 저울질하며 비용을 실질적으로 절충할 수 있다. 비용과 의사 결정에 대한 책임이 여럿에게 분산된다면, 범죄율이 너무 높아지거나, 처벌이 과도해지거나, 무고한 사람이 누명을 쓰는 경우가 증가하고, 누군가가 입은 손해가 구조적으로 다른 누군가의 이득으로 이어질 것이다. 최악의 경우, 도덕적 해이로 인한 비용의 증가가 손해에 대한 배상의 감소, 검거율 감소로, 그리고 부당 투옥의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이다. 우리의 기존 사법 제도는 이 최악의 경우에서 멀지 않다.

현재의 사법 제도를 바라보는 자유주의적 관점

새로운 제도를 설계하기에 앞서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현재의 “사법” 제도가 가진 부당한 측면부터 살펴보자. 사법 제도라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경찰, 법원, 감옥 따위를 떠올리며, 이들로부터 정의란 가치가 생산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는 손해를 입으면 정의를 찾는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내게 손해를 입힌 주체 또는 내가 가입한 상해 보험사로부터 배상(보상)을 받음으로써 결과가 "공정"해지기를 원한다. 악행을 처벌할 때는 언제나 비용이 든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가해자의 처벌은 피해자가 받은 손실의 복구나 치유와는 상관이 없다. 물론 처벌이 범죄 억제 요인으로 작용할 수는 있겠지만, 이미 범죄가 벌어진 이후에는 더 이상 범죄 억제 요인으로서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따라서 처벌은 정의 자체와는 무관한 것이다.

공정함이란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다. 무엇이 공정한가에 대해서 저마다 의견이 다르기 때문이다. 무엇이 공정한가를 규정하는 단 한 가지의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자발적인 거래(voluntary trade)일 것이다. 자발적인 거래가 아니고서야 거래 당사자 중 한 명은 무조건 손해를 입었다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현대의 사법 제도가 정의보다는 불의를 더 발생시키는 것도 이 자발적인 거래의 부재로 인한 것이다. 당신과는 일면식도 없는 앨리스란 사람이 휴가 중 집을 털렸다고 해보자. 앨리스는 정의 구현을 원한다. 앨리스는 도둑맞은 물건들을 되찾고, 도둑 때문에 발생한 자신의 시간적, 정신적 피해를 보상받고자 한다. 여기까지는 도둑으로 인해 하나의 불의가 발생했다.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앨리스가 자기 대신 도둑을 찾아줄 탐정을 구해달라고 당신에게 부탁한다. 자신에겐 탐정을 고용할 돈이 없으며, 당신도 그 도둑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면서 말이다. 당신은 고민 끝에, 앨리스를 대신해 사설 탐정을 고용하기보다는 알아서 문단속을 잘 하고 암호화폐를 좀 사두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다. 앨리스는 온 마을을 들쑤시고 다니지만, 앨리스를 선뜻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다. 좌절한 앨리스는 집에 있던 총 한 자루를 들고다니며 정의 구현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면 쏴버리겠다고 사람들을 협박하기 시작한다.

하나에 불과하던 불의가 이제 많은 불의로 늘어났다. 앨리스는 협박죄를 저질렀다. 어떤 면에서 앨리스의 죄는 도둑의 죄보다 훨씬 중죄이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총을 들이대며 자신을 돕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앨리스의 협박에 굴복하지만, 그중 한 남자가 끝까지 저항하다 결국 앨리스의 총에 맞고 죽는다. 앨리스는 이것이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 생각한다. 이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면 사회에 범죄가 더 만연해질 거라면서 말이다. (사후 종범, 범죄자 은닉, 수사 방해 따위를 언급하며…) 그 남자는 도둑을 도운 죗값을 치른 것일 뿐이라며 앨리스는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한다.

앨리스가 누군가로부터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앨리스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입혀도 된다는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앨리스는 아무 죄없는 다른 사람에게 불의를 저지르지 않으면서도 정의를 구현할 방법을 찾았어야 한다. 구성원의 기여 의무를 규정하는 평화 조약이라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이 평화 조약을 어떻게 설계해야 오남용과 도덕적 해이가 방지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현행 제도에서는, 그 제도의 효과와 질에 관계없이 수사, 재판, 처벌의 비용은 물론 범죄로부터 발생한 손해 보전에 드는 비용까지 모두 납세자가 부담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범죄에 대해 "더 강경한 척"을 할수록 이득을 얻는다. 변호사들은 범죄가 많아지고 법적 절차가 복잡해질수록, 감옥 관리자는 범죄자들의 옥살이가 길어질수록, 검사들은 정의구현율보다는 검거율이 높을수록 이득을 얻는다. 하지만 이들 중 자신의 실수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비용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민의 돈을 맘대로 주무르면서 이득을 보는 자들이 너무 많다. 이 모든 게 도덕적 해이다!

불의에 대한 보험

앨리스는 자신이 겪고 있는 내적 모순을 폭력 외의 수단으로 해결하기로 결정한다. 보험에 가입하기로 한 것이다. 나중에 집에 또 도둑이 든다면, 보험금으로 탐정을 고용해 도둑을 잡고, 그를 법정에 세운 후 감옥에 넣어버리기 위해서다. 그러나 보험사를 고르던 앨리스는 현행의 제도에서는 보험료가 무지하게 비쌀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 계산이 보험설계사만큼 정확할 리는 없겠지만 대강 추산해본다면, 경찰의 방범 순찰 비용은 정기 건강 검진 비용과 비슷할 것이고, 재판 비용은 응급실 방문에 이은 며칠 간의 입원 비용에 맞먹을 것이다. 또, 교도소 수감 비용은 암 등의 질환으로 인한 장기 입원 비용과 비슷할 것이며, 의료 과실에 대한 보험료는 부당 수감에 대한 보험료와 맞먹을 것이다. 요컨대, 한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데 따르는 리스크는 큰 병에 걸리는 데 따르는 리스크와 얼추 비슷할 것이라는 말이다. 본인부담률 0%에 제한 없는 의료 보험 상품을 찾는 사람들은 비싼 보험료를 확인하고는 금새 포기할 것이다. 보험 회사가 리스크 프로파일별 그룹화를 무시하고 가입자에게 덮어놓고 모든 손해 종류에 대해 통으로 의무 보장을 강제할 때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까지 생각한다면 보험 비용은 더 높아진다. 오늘날의 의료 보험과 마찬가지로 불의에 대한 보험 비용은 그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불하고자 하는 것보다 더 비쌀 것이다.

현대 사법 제도의 문제는 그 비용이 전부 일반 납세자들에게 전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비용의 구체적인 전모에 대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데 있다(특히 기회 비용과 오류까지 감안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경찰을 부르고 수사를 시작할 때마다 보험료가 올라간다면, 사람들은 결국 경찰을 덜 부르게 될 것이다. 범인을 기소하는데 본인부담금을 내야된다면, 사람들은 사소한 범죄에 대해서는 신고를 포기할 것이다. 그러나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내가 아니라면, 사법 비용이 모두 세금을 통해 사회화 되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부가 피해자가 없는 범죄까지 모두 단죄하려고 나서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있지도 않은 질병을 꾸며낼 권리를 의사에게 주고, 볼 필요도 없는 환자에게 치료를 강요하면서, 그 비용은 보험 회사가 100% 부담하게 하는 상황을 떠올려보라.

한 연구에 따르면, 지구상에 살인을 뿌리뽑기 위해 설문 참여 당사자가 개인적으로 얼마까지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느냐고 질문을 던졌느데, 답변들 가운데 최고 액수가 1200만 달러였다고 한다. 비록 추론 과정에 결함이 있는 연구였다 하더라도(행위를 관측하는 것이 아니라 의견을 물었으므로), 사람들이 한 번의 살인을 막는데, (그게 남의 돈이라면) 못해도 1,200만 달러 쯤은 쓸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적 도덕적 해이의 핵심이 여기에 놓여 있다.

현행 형사법 제도가 작동하는데 드는 비용을 이를 활용하는 사람이 100% 책임져야 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정신적으로 몹시 취약한 사람이거나, 재범률이 현저히 높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감옥에 갇히지 않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누군가를 감옥에 몇십 년간 가둬놓는 데 드는 비용이 누군가의 억울한 옥살이나 억울한 죽음에서 발생하는 비용보다 훨씬 클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절도, 사기, 마약, 그리고 살인으로도 감옥에 가지 않는 사람들이 수두룩해질 것이다. 순전히 즐거움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마와 같은 극히 일부 경우를 빼면, 장기 징역형으로 범죄를 억제하거나 범죄자를 교화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질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순전히 실용주의적 관점에 입각해 논증을 펼쳤다. 사법 시스템이 우리가 지불하는 보험료에 의해 지탱된다면, 그 비용을 자발적으로 지불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상해에 대한 보상이 최소한의 보험료로도 보장되고, 보험이 적용되는 물건의 가치가 올라갈수록 도난에 대비한 보험료가 높아진다고 해보자. 어느 시점부터는 손해 배상을 요구하는 것보다 손해 자체에 대한 보험을 드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되고, 경찰의 순찰 인력을 늘리는 것보다 사설 경호 업체를 고용하는 것이 더 저렴한 선택이 될 것이다. 보험금만 타면 범죄자를 찾아내는 걸 포기하는 사람들도 생겨날 것이다.

모두가 보험금에만 의지한 채 정의구현을 포기한다면, 검거율은 낮아지고 범죄율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범죄율이 올라갈수록 손해에 대한 보험료도 올라간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범죄자를 잡아낼 수사관을 고용하기 시작할 것이다. 인생의 다른 모든 일에서처럼, 여기에도 균형점이란 것이 존재한다. 체포율이 100%에 가까워질수록 범죄자 체포에 드는 비용은 무한하게 커지며, 체포율이 0%에 가까워질수록 보험 비용이 무한하게 커진다.

경쟁 시장에서 보험 회사는 범죄자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잡아내야 할 동기가 있다. 또한 범죄율 상승을 억제하면서도 경쟁력 있는 보험료를 갖추기 위해 범죄에 대한 형량을 적정 수준에서 유지시켜야 할 동기도 있다.

연구에 따르면 검거율이 형량보다 훨씬 중요한 요소이다. 범죄를 통해 얻는 "이득"이 체포될 때의 리스크에 대한 "보험료"보다 크다면, 더 이상 범죄에 대한 리스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보험” 비용은 보험 가입자 중 보험금을 단 한 번도 청구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많느냐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다시 말해, 체포될 확률이 낮을수록 범죄자가 감수해야 할 체포 "보험"의 비용이 낮아진다는 말이다. 체포 확률이 10%인 범죄를 한 번 저지를 때마다 100달러를 벌 수 있는 경우, 한 번의 체포로 물어야 할 벌금이나 배상금이 1000달러보다 낮은 한 이 범죄는 수익성이 좋은 범죄이다. 저작권 침해와 같은 범죄는 체포율이 매우 낮다. 오늘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밥 먹듯 저작권 법을 위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벌금의 범죄 억제력에도 한계 효용의 법칙이 적용된다. 감옥에서 보내는 첫 날의 범죄 억제력이 1만 번째 날의 범죄 억제력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크다는 말이다. 하지만 감옥 운영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들은 그 첫째 날이나 1만 번째 날이나 동일한 비용을 지불한다. 만약 세상의 모든 죄에 사형이 언도되는 세상이라면, 신호 위반에 적발될 바에야 교통 경찰을 죽이는 편이 나을 것이다. 다시 말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범죄의 경중에 비례하지 않는다면 범죄의 강도와 빈도가 올라간다는 것이다. 일정 연령 이상의 사람들에게 장기 복역은 죽음보다 더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한달 밖에 더 살지 못할 사람은 복역 기간이 연장된다 하더라도 눈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공유지의 비극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비용효율 분석을 할 수 있는가가 여기에서 커뮤니티가 마주하는 문제이다. 처벌 비용 중 0.0000001%만 지불해도 되는 사람들은 범죄자에 대한 강한 처벌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어차피 자신이 낸 세금이 아무렇게나 낭비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납세자들은 긴 징역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자신이 부담하고 있다고 느끼지 못할 것이다. 감옥을 운영하거나, 감옥에 취직된 사람들을 포함해 감옥 제도로부터 재정적인 이득을 얻는 사람들 역시 강한 처벌을 원할 것이다.

사법 제도가 여러 보험 회사간의 경쟁 구도 안에서 작동하고, 범죄의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더불어 범죄자 수사, 기소, 처벌에 따른 비용을 이들 보험 회사가 책임지는 구조가 갖춰진다면, 인센티브의 적절한 일치가 이루어진다. 범죄자 체포에 게으른 보험 회사도, 범죄자 수사와 처벌에 과도하게 치중하는 보험 회사도 모두 보험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누명을 뒤집어 씌우는 보험회사도 보험료를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각각의 개인은 어떤 보험 회사에 가입할지 선택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도덕적 해이는 최소화하면서도 모든 이의 시장 참여를 자발적으로, 그리고 민주적으로 만들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범죄자를 체포하고 처벌하는 데 드는 비용을 결정하는 사람이 그 비용을 지불하지도, 자신의 오류를 책임지지도 않는 현행의 DINO식 사법 제도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DINO에서는 모든 중요한 일들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작은 나머지, 투표권자가 투표를 해도 잃을 게 아무 것도 없는 그런 투표에 의해 결정된다. 현행 사법 시스템을 유지하되 그 비용을 충당하던 세금 예산을 끊어버린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행 사법 제도보다 더 싸고 효율적인 대안을 찾아내 사용할 것이다.

사회주의적 정의는 불가능하다

사람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처벌 만능주의는 우리 사회의 큰 문제 중 하나다. 누군가가 도둑을 맞는 경우, 국가는 범죄자를 잡는데만 골몰할 뿐 피해자에 대한 보상에는 좀처럼 관심을 두지 않는다. 또한 도둑은 자신의 옥살이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부담하지도 않을 뿐더러, 도둑에게는 이를 부담할 경제적 능력이 있을 리도 없다. 처벌에 따르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면, 누구든 강력한 처벌을 이야기할 것이다. 우리는 정말로 범죄에 대한 사회적 응징을 원하는가? 응징으로 정말로 범죄를 근절할 수 있을까? 누워서 침뱉기는 아닐까? 응징을 추구하던 우리는 결국 우리 자신을 해치고 말 것이다. 응징의 비용을 사회화하면 그 고통은 자신을 제외한 모두에게 전가된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자신의 논문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경제 계산”(Economic Calculation in the Socialist Commonwealth)에서 사회주의 체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본질적 원인을 설명한다. 사회주의에서는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될 수 없으며, 가격 피드백이 없이는, 형을 결정하는 관료들과 법을 만드는 정치인들이 사회의 손익을 측정할 방법이 없다. 형이 길어지고 더 많은 법이 생길수록 이들의 선출 가능성은 높아지고 권력과 부 역시 이들에게 더욱 집중된다. 사람들은 고작 100만 원의 손실에 대해서도 경찰을 부르는 데 거리낌이 없을 것이다. 경찰 수사, 재판, 처벌의 비용이 1억 원이 소요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 1억 원은 이만큼의 돈을 가지고 있을 리 없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걷어진 돈이며, 그러는 사이에도 범죄의 피해자는 아무런 배상을 받지도 못한다.

사람들은 손해를 입고 나면 이성을 잃기 마련이다. 분노에 휩쓸린 피해자들은 복수심에 눈이 멀어 실제 벌어진 범죄의 경중과 관계없이 가해자에게 큰 처벌만이 집행되기만을 바란다. 손해를 입거나, 도둑맞거나, 폭행을 당한 사람에게 총을 쥐어주고, 이 총을 그 범죄자에게 쏘더라도 용서가 된다고 말한다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 사회주의적 사법 제도 아래에서는 모든 감정과 비합리적 행동이 실제 범죄율 감소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과잉 처벌과 관료적 과잉 재판을 통해 분출된다.

평화 조약을 협상 중인 커뮤니티라면 어떻게 사법 제도를 운영할 것인지를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정치 플레이오프를 통해 법관을 선출하고 법을 만든다면 현재 제도의 부패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재 제도 안에서는 아무리 정직한 사람들을 올바른 자리에 앉혀 놓는다 해도 여전히 도덕적 해이에 따른 문제들이 숱하게 발생한다.

오늘날의 제도에서는 검사, 법관, 판사가 실수를 저질렀을 때에도, 일반 납세자와 누명을 쓴 사람들 이들의 실수에 대한 비용을 부담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커다란 도덕적 해이 덕분에 검사들은 범죄율을 낮추는 것보다는 검거율을 올리는 데 집중하게 된다. 게다가 "부당 검거"의 비용은 "검거 실패"의 비용에 비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부당 검거의 비용은 수 년, 혹은 수십 년이 지나서 겨우 발견되거나 아예 발견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억울한 옥살이를 마친 당신이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리 노력해도 제대로 된 보상은 못 받고 돈만 날리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평화 조약의 목적은 공정한 재판과 판결의 절차를 규정하는 데 있다. 이 절차가 규정되고 나면, 이 절차를 집행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을 지불할 책임은 시민, 혹은 보험 회사에게 부여한다. 이는 보험 회사가 부당 처벌에서 이득을 취하는 것을 막는다. 시민을 대표하는 자가 판결을 내리고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단이 배석하는 공정한 재판에 대해서도 보험 회사는 똑같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당한 처벌을 배상하는 데 드는 비용은 대개 처벌 없이 진범을 풀어줬을 때 드는 사회적 비용보다 더 크다. 이 리스크를 판별할 위치에 있는 유일한 사람은 혐의자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당사자다. 그리고 혹시나 모를 부당 투옥에 대한 배상 책임(자신이 가입한 보험 등을 통해)을 짊어져야 하는 것 역시 바로 이들이다.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보상과 처벌을 요구한다면 정부의 행정력이 이 사람을 위해서 사용되는 것이므로, 부당 처벌에 대한 보험료를 지불해야 하는 것은 이들이어야 한다.

보험 회사는 원고측의 기소가 부당한 것일 경우에 대비한 비용을 산정하기 위해 먼저 나서서 사건의 진상을 면밀히 조사할 가능성이 높다. (보험 회사가 판단하기에) 사건이 애매모호할수록, 처벌이 강해지고 배상액이 커질수록, 보험료도 높아질 것이다. 피해자는 복수의 보험 회사로부터 입찰을 받아 비용을 낮출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비용의 상승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보험 회사로서는 입찰가 제시를 위해 사건을 검토하는 데에도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이제 한 범죄가 최종적으로 유죄 판결을 받는 것은 배심원단, 보험 회사, 그리고 피해자의 보험료 지불 의사와 능력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다. 범죄의 죄질이 나쁘지만 피해자가 판결에 드는 비용을 지불 의사나 능력이 없는 경우, 혹시나 모를 부당 투옥에 대한 보험료는 해당 판결에 관심을 가지는 다른 사람들의 기부에 의해 지불될 것이다. 피해자가 보험에 들지 않았더라도, 재범 확률이 높은 범죄자에 대해서라면 보험 회사(혹은 보험회사들)는 대체로 가해자의 수감 비용을 지불하고자 할 것이다. 결국에는 재범자를 다시 체포하고, 다시 기소하고, 새로 생겨난 피해자에게 보상금을 지불하는 데 드는 비용을 책임져야 하는 것도 이 보험 회사이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없으면 가해자도 없고, 보험료를 낼 사람도 없다는 것, 따라서 범죄도 없다는 것이 이 방식의 핵심이다. 나아가 정치 플레이오프로 선출된 입법자들로서는 피해자가 없는 범죄를 규정할 법을 만들 이유도 없다. “피해자 없는” 범죄를 규정하는 법을 통과시킨다 하더라도 이 법을 집행할 예산은 커뮤니티의 세금을 통해서가 아니라 개인(혹은 보험 회사)의 자금으로 충당된다. 이 법의 집행을 위해 돈을 낼 의사가 있다는 것은, 내 개인적인 돈을 사용해서라도 이 범죄를 막아야 할 만큼 이 범죄가 끼치는 해악이 크다는 증거가 된다. 피해자 없는 범죄를 없애면 사법 제도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처벌에 관해서는, 연쇄 범죄를 멈출 수 있는 인센티브 정도는 남겨놓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첫 번째 살인에서부터 사형이 언도된다면, 살인자는 추가 살인을 감수하면서라도 체포를 피하기 위해 더 애를 쓸 것이다. 자수에도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한다. 모든 경우에 딱 들어맞는 접근법이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 인센티브의 적절한 일치가 중요하다.

요약

사법 제도가 부패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도덕적 해이가 최대한 억제되어야 한다. 손해에 대한 보험, 범죄 수사, 처벌 비용, 부당 처벌의 리스크가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폭력의 사용과 재산의 이전을 인가하는 공정한 절차를 규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절차와 관련된 일체의 비용, 그리고 이를 집행하면서 발생하는 실수에 대한 배상은 이 절차를 활용하고 이로부터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 책임져야 한다.

재산상 손실을 입은 사람은 보험 회사에 보험금을 청구한다. 보험 회사는 손해 내용을 확인하고 보험 약관에 따라 청구된 보험금을 지불한다. 이제 보험 회사는 범죄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를 가지며, 범죄자를 체포할 가장 가성비가 높은 수단을 선택하거나, 범죄자를 잡지 않기로 선택할 수도 있다. 보험 회사가 용의자를 찾아내면, 이들을 체포한 후 혹시나 모를 부당 감금의 리스크도 계산에 반영한다.

용의자가 체포되면 재판이 시작된다. 정치 플레이오프에서 뽑힌 최고 리더 중 무작위로 지정된 세 명의 판사가 재판을 진행한다. 재판의 비용은 보험 회사가 지불한다. 체포된 용의자는 변호사 없이, 혹은 그의 보험 회사가 지정한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재판에 임한다. 원고의 보험 회사는 재판에서 패소할 경우를 대비해 피고의 변호사나 보험 회사에게 지불할 증거금을 따로 떼둔다. 이 증거금을 통해 "국선 변호인"이 보상을 받게 되며, 증거금의 규모는 구형량에 비례한다. 사형을 구형한 경우엔 엄청난 증거금이 필요할 것이며, 벌금형을 구형하는 경우에는 그 벌금에 비례하는 증거금이 필요할 것이다.

검찰의 불합리한 과잉 구형을 막는 데 게임 이론이 사용될 수 있다. 원고의 구형량이 사전에 공표되며 판사들은 이를 깎을 수 없다고 상상해보자. 이 경우 판사들은 피고가 유죄인 동시에 원고의 구형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해야지만 유죄 판결이 가능하다. 좀도둑질에 사형을 구형하는 등, 구형량이 터무니없이 클 경우, 해당 재판은 좀도둑질 자체의 유죄 여부와는 상관없이 결론 없이 종결되며 이는 다시 재판장에 올라올 수 없다. 쿠키를 쪼갤 권리(처벌이냐, 석방이냐)는 원고측에, 쿠키 조각을 나눠줄 권리는 판사에게 주자는 것이다. 나아가, 기소가 이루어진 경우 형 집행의 비용이 에스크로에 들어가야한다. 만약 기소측이 법원에 5년형을 구형했다면, 피고의 5년 동안의 감옥 생활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선불로 지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요소들을 활용하면, 무죄 추정 원칙은 시스템적으로 실현되고, 불의를 발생시키는 현행 사법 제도의 모순 역시 지양될 수 있다.

부당한 판결에 대해, 피해자는 기소측의 보험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이 소송에서도 다른 범죄에 대한 소송과 동일한 규칙이 적용된다. 누명 피해자 입장에서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는 것과 유괴범에게 잡혀 지하실에 갇혀 있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범죄 기업들

사회는 사람들로 구성되며, 사람만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에서 모든 기업과 법인격은 상호 계약을 맺은 사람들의 집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 계약은 책임을 양도할 수 있지만 제한할 수는 없으며, 징역형을 벌금형으로 바꿔주지도 못한다. 따라서, 어떤 "회사"가 사형 판결이 날 정도의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 회사의 누군가는 사형을 당해야 한다. 여기서 누가 사형을 당할지는 회사 구성원들이 상호간에 맺은 계약에 의해 결정된다.

이 범죄의 책임 소재가 누구에게 있는지는 고용 계약이나 주주 계약에서 나타난다. 제약 회사가 고의적으로 식수를 오염시키고 이로 인해 1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면, 이 사건은 일군의 범죄자들이 고의로 타인을 독살한 사건과 달리 취급되지 않을 것이다. 이 식수 오염 사건에 연루된 모든 사람은 이 일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 또한 이들간에 맺어진 계약이 있다하더라도 이 범죄 행위가 "공모죄"가 아닌 "기업 범죄"가 되진 못한다. 또한 계약을 가지고 이 범죄에 대한 형량을 줄이는 것도 불가능하다.

범죄 기업은 조직 폭력단과 다르게 취급되어선 안된다. 조직 폭력단의 사장과 직원이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벌금형에만 처해진다면, 사법 제도는 완전히 망가질 것이다. 좀도둑이 수천 달러를 훔친 죄로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한다면, 회사의 이름으로 수십억의 횡령을 저지른 사람은 얼마나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하는가? CEO만 감옥에 갇혀 있는 것으로 충분하겠는가?

수년간 활동을 하며 훔친 장물을 1000명에게 나눠준 좀도둑이 있다고 하자. 이 좀도둑이 체포된 경우, 이 좀도둑 한 명만 감옥에 들어가면 족할까, 아니면 그로부터 장물을 나눠받은 1000명이 모두 감옥에 들어가야 할까? 수년간의 도둑질을 배당금이란 명목으로 주주들에게 나눠 준 회사에 정부가 유한한 책임만을 허락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기업의 범죄는 벌금으로만 처벌하지만, "자영업자"의 죄는 징역으로 처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업을 하며 벌인 범죄로 주주들이 옥살이를 하고 있는 회사에 여러분들은 감히 투자할 수 있겠는가?

범죄 사업에 투자한 주주와 일반인에게 적용되는 형사 책임 상의 불균형은 곧 권력의 불균형을 초래해 진정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다. 그리고 이러한 불균형은 조직 범죄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정글의 법칙 아래에서 평화 조약을 협상 중인 사람이라면 이러한 계약 조건을 면밀히 숙고해야 한다.

인질의 몸값에 대한 죄수의 딜레마

공정한 사법 제도는 시민이 신뢰할 수 있는 절차, 그 절차 상의 모든 거래들이 균형을 이루어야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그 비용을 지불하는 절차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런 절차를 설계하는 데에는 많은 도덕적 해이와 죄수의 딜레마가 엮여 있다.

인질의 몸값의 문제를 떠올려보자. 범죄자는 값진 재산을 훔치거나, 누군가를 납치해 몸값을 얻어냄으로써 이득을 본다. 범죄자가 가지는 인센티브는 자신이 체포될 리스크를 상쇄시키고 남을 만큼의 몸값을 버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범죄가 발생했을 때 몸값을 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이런 범죄는 벌어지지 않는다. 결국 몸값을 지불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범죄자들이 이런 범죄를 일으킨다. 따라서 몸값을 지불하는 것은 죄수의 딜레마에서 동료 시민들을 배신하는 것과 같다.

몸값을 두고 벌어지는 범죄를 막고자 하는 사회는 몸값 지불을 불법으로 만들 것이다. 몸값을 지불하는 사람을 몸값을 요구하는 사람의 공범자로 만드는 것이다. 범죄자를 체포할 목적으로 몸값 지불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 사실은 수사 기관에게 알려져야 하며 범죄자가 실제로 몸값을 취하지 못하도록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몸값 지불에 대한 처벌이 강해질수록 범죄자나 그 피해자에 의해 범죄 행위가 성공할 가능성은 낮아질 것이다.

이런 죄수의 딜레마가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는 평화 조약을 맺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하고, 규칙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또한 진정한 민주주의적 절차가 필요한 것은 이 규칙과 규칙을 집행할 주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없이는 아무도 합의하지 않은 사람들이 규칙을 만들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서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에 고통받게 된다.

완벽한 것은 없다

이 장에서 내가 소개한 사법 제도도 완벽할 수는 없으며 그 자체로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현 체제가 구조적인 도덕적 해이와 인센티브의 불일치로 근본적인 수준에서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부패와 비용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체제라면, 범죄의 비용, 보험의 비용, 수사의 비용, 기소의 비용, 오류의 비용을 하나의 조직에 일치시켜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입법자가 판사석에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판사와 배심원을 지정하는 과정에 진정한 민주주의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내가 제안하는 사법 제도는 스마트 컨트랙트의 원리 위에서 작동한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모든 법률 관련 보험에 적용될 수 있는, 스마트 컨트랙트 하에서의 보험의 원리를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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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모르게 현 자본주의 위에서 누구에게 나 똑같은 공정한 정의를 구축하는건 코드에서도 쉽진 않겠구나 라고 느껴지는 장이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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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5 Democratic Justice :+1: :+1: :+1: :+1: :+1: :+1: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