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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More Equal Animals - 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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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 스마트 컨트랙트

계약이란 무엇인가? 계약은 어떻게 구속력을 가지며, 어떻게 집행되는가? 우리는 일상 속에서 무수하게 많은 계약에 서명을 하고, 그 과정에서 변호사에게 엄청난 돈을 갖다바친다. 하지만 우리 중 계약이라는 개념의 이면에 어떤 원칙이 숨어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본 적 있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모든 약속은 무조건적으로 집행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냥 참고 정도만 되어도 괜찮은가?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핵심 원리가 여기에 대한 답에서 드러난다.

머레이 로스바드와 윌리엄슨 에버스가 주창한 “명의 이전으로서의 계약” 이론(Title Transfer Theory of Contract)에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성립시키는 핵심적인 개념들이 담겨 있다. 재산권이 어떻게 도출되는가에 관한 로스바드의 추론은 “홈스테딩(homesteading)”, 혹은 “선제 사용(first use)” 이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이것은 평화 조약에서 재산권이 도출된다는 나의 추론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재산권에 관한 그의 계약 이론은 여전히 시사점을 가진다.

많은 철학이 "권리"라는 개념을 “불가침 원칙” 등과 같은 근본적 공리로 간주한다. 하지만 자연에는 이를 지켜줄 아무런 보호막이나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기껏 해야 평화 조약과 같은 합의가 가능할 뿐이다. 나는 “권리”에 대한 이런 공리적 접근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로스바드의 연구에서 논리적으로 정합하며 집행가능한 평화 조약(즉, 진정한 민주주의)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관해 풍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누가 무엇을 소유하는지, 소유권이 어떻게 변경될 것인지, 어떻게 분쟁을 해결할 것인지를 규정하는 것이 평화 조약의 핵심이다. 소유권을 둘러싼 혼란은 분쟁을 일으키는데, 이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바로 평화 조약이다. 이로부터 평화 조약은 재산권을 둘러싼 모호성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절차를 규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유추된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무엇이 정당한 계약이며, 이는 어떻게 집행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깊이 들여다보기 전에, 현대에서 계약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부터 살펴보자. 계약이란 대체로 뭔가를 "해주겠다"는(to do), 혹은 "주겠다"는(to give) 약속의 결합이다. 만약 커피 한 잔을 사 먹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커피 한 잔의 명의를 이전 받는다는 조건으로 일정 금액의 명의를 이전시키는 구두 계약을 체결한다. 이 경우는 계약 당사자들의 의도는 서면에 기록될 필요가 없다. 이것이 “주는” 계약(“to give” contract)의 한 사례이다. 이러한 “주는” 계약은, 물리적 사물에 연결된 "디지털 명의"가 이미 생성되었다면 스마트 컨트랙트의 형태로 블록체인 상에 쉽게 기록될 수 있다.

고용 계약은 “해주겠다는” 계약(“to do” contract)의 한 종류이다. 당신이 다음 주 40시간을 말발굽 공장에서 일하는 대신, 공장장이 당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기로 약속했다고 해보자. 만약 당신이 일방적으로 일을 안 하기로 결정한다면 이것은 계약 불이행으로 간주된다. 잘하면 이는 단순히 노동의 대가를 못 받는 것만으로 끝날 수 있겠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왕국이 무너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8장 - 독립의 설계에서 살펴본 옛 이야기를 떠올려보라.

“못 하나가 모자라서 말발굽을 못 고쳤네.
말발굽을 못 고쳐서 말이 달리질 못했네.
말이 달리질 못하니 기수가 달릴 수 없었네.
기수가 달릴 수 없으니 명령을 전달할 수 없었네.
명령을 전달할 수 없으니 전투에서 패배했네.
전투에서 패배하니 왕국이 망해 버렸네.
이 모든 게 말발굽 고칠 못 하나가 모자라서 벌어진 일이었네.”

“계약된”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그 약속에 의지하고 있는 상대방에게 큰 타격을 줄 수도 있다. 이 일이 법정 공방으로까지 이어진 경우, 전통적 계약 이론을 신봉하는 판사라면 당신에게 원래 약속했던 노동을 실행하라고 명하기보다는, 약속된 노동을 하지 않아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라고 명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손해가 발생한 것인가? 상대방이 나의 약속에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를 내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다음 주에 40시간을 일하는 대가로 10,000달러가 주어지지만, 도중에 그만두는 경우엔 1,000만 달러를 배상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갑자기 몸이 아프거나 차 사고라도 나면 어쩌겠는가? 당신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상대가 정말로 1,000만 달러 규모의 손해를 입는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의 노동을 통해 상대가 1,000만 달러의 손해를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당신이 알고 있다면, 당신은 처음부터 더 많은 대가를 요구하거나, 불의의 사고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1,000만 달러의 배상 책임으로부터 당신을 지켜줄 보험을 가입할 것이다.

계약으로서의 약혼
모든 종류의 “해주겠다는” 계약은 사실상 아무런 강제성이 없는 약속이다. 약혼은 법정에서 하나의 계약으로 취급된다. 약혼자로부터 갑자기 버림을 받은 사람은 상대를 고소해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법원은 이를 인정할 것이다. 결혼식 준비에 쏟은 비용, 결혼을 전제로 직장을 그만 둔 데 따르는 비용 등, 한도 끝도 없는 것들이 약혼의 파기에 따른 손해로 인정될 수 있다. 두 당사자가 "결혼을 약속한다"는 이 계약의 내용이 그 자체로 너무 모호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대부분의 "계약"은 당사자에 의해서 "합의"되는 것이 아니라, 실은 법원에 의해 "사후적"으로 규정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해주겠다는” 약속을 이행하거나, “해주겠다는”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데에 따른 손해의 배상을 정당화함에 있어서 많은 법원들이 “의존”(reliance)의 원칙을 끌어온다. 이론상 "합리적 의존"만이 타당한 것으로 간주되며, 따라서 당사자 중 한쪽이 "비합리적"이라면 그 계약은 이행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 방식은, 법원이 약속의 이행을 강제할 수 있을 때만 약속에 의존하는 행위는 합리적일 수 있으며, 동시에 약속에 의존하는 게 합리적일 때만 동시에 법원은 약속의 이행을 강제할 수 있다는 순환 논증에 빠진다.

콘서트 가수의 계약
당신이 콘서트에서 노래를 부르고 그 대가로 20만 달러를 받기로 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해보자. 계약 체결 직후 콘서트 기획자는 1백만 달러 어치의 콘서트 티켓을 팔아 치운다. 하지만 당신은 콘서트 당일 갑작스럽게 악화된 무대 공포증 때문에 노래를 포기해 버린다.이 경우 콘서트 기획자는 1백만 달러 어치의 티켓값을 포함해 공연장 예약 및 광고비를 포함한 모든 비용을 도로 뱉어내야 한다. 콘서트 진행 비용이 총 80만 달러라고 했을 때 당신이 노래를 부르기만 했다면 콘서트 기획자는 20만 달러의 순수익을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노래를 부르지 않았으므로, 콘서트 기획자는 60만 달러의 콘서트 비용만 지출했지 아무런 매상을 올리지 못해 예상 이익을 실현하는 데 실패한다. 요컨대, 콘서트 기획자는 당신 덕분에 기대 수익을 포함해 총 80만 달러의 손해를 입은 것이다.

이 일이 법정 공방으로 이어진다면, 판사는 당신에게 "일방적 공연 취소"에 따른 손해 배상으로 60에서 80만 달러와 더불어 소송 비용을 콘서트 기획자 측에 배상하라고 선고할 것이다. 여기서의 질문은 당신이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는 그 약속에 의해 이 계약이 성립한다고 보는 것이 과연 합당하느냐이다.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상황이 온 경우에 발생할 손해를 당신이 모두 물어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이 계약에 합의했을까? 아니 그 전에, 이렇게 발생할 손해를 배상해줄 능력이 당신에게는 있는가? 법원이 당신에게 배상을 명령한다 하더라도, 콘서트 기획자가 이 금액을 과연 어떻게 받아내야 한다는 것인가?

이 사례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법원은 당신에게 노래를 부르도록 강요할 수 없으며,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당신이 최고의 기량으로 노래를 부르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당신이 콘서트를 한 시간 앞두고 노래를 포기한 경우, 법원이 아무리 서둘러 분쟁 조정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이를 통해서는 콘서트 취소로 인한 손해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공연을 명령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 법원은 한 재산의 명의를 약속 불이행자로부터 다른 당사자에게로 이전시키는 방식으로 모든 분쟁을 해결한다. 만약 약속 불이행자에게 재산이 없다면, 법원은 임금 차압을 명할 것이다. 몇몇 경우 법원은 약속 불이행자에게 공연을 할 것인지, 돈을 물어줄 것인지 선택권을 줄 수도 있다. 이는 모든 계약이 잠재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손해를 명확하게 규정하면서, 사전 동의에 따른 재산의 이전이라는 형식으로 기술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가수의 계약서를 다시 작성해본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만약 가수가 노래를 부르면 콘서트 기획자가 보유한 20만 달러가 가수에게로 이전되며, 가수가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경우 가수가 보유한 70만 달러가 공연 기획자에게 이전된다. 분쟁이 벌어지는 경우, 판사나 배심원은 약속된 대로 노래가 불러졌는지만을 확인하면 된다. 가수에게 70만 달러가 없다면, 콘서트 기획자는 보험사를 알아봐야 할 것이다. 보험사가 없다면, 가수가 노래를 부르지 않거나 부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티켓 환불은 불가능하다는 내용이 티켓에 적혀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경우엔 결국 관객이 크라우드 펀딩으로 “보험” 자금을 마련할 것이다.

더 스마트한 스마트 컨트랙트
리스크를 보험사나 관객에게 양도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가수에게도 70만 달러가 없다고 가정해보자. 여기에서 흥미로운 질문이 떠오른다.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명의의 이전에 동의하는 계약이 가능한가? 예컨대 계약서에 가수가 노래를 부르면 콘서트 기획자가 "소유"한 브루클린 브리지가 가수에게로 이전되며, 가수가 노래를 부르지 못하면 가수가 소유한 10억 톤의 황금이 공연 기획자에게로 이전된다고 적혀 있다고 생각해보자. 하지만 이 콘서트 기획자가 브루클린 브리지를 소유하고 있을 리 만무하며, 가수 역시 10억 톤의 황금을 가지고 있을 턱이 없다. 명의 이전으로서의 계약 이론을 내 식대로 해석해보자면, 당사자가 현재 소유하고 있지 않은 재산에 대한 명의의 이전이 약속된 모든 계약은 무효이다. 이 외의 모든 계약은 자산을 이전 받기 위해, "해주는 행위"가 그 자산의 명의를 획득하는 “해주겠다는” 계약(“to do” contract)과 동일하다.

명의 이전으로서의 계약 이론에 대한 이런 해석은 거의 모든 종류의 계약에 대해 커다란 시사점을 가진다. 우리는 계약을 하나의 약속이라고 보는 관점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계약을 조건부 명의 이전으로 한정짓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조심하지 않으면 "약속으로서의 계약"이라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로스바드마저도 그의 책 <자유의 윤리학(The Ethics of Liberty)>의 “재산권과 계약 이론” 장에서 같은 함정에 빠졌었다.

다행히 그 메커니즘 상 유효하지 않은 계약의 체결이 애초에 불가능한 프레임워크가 존재한다. 바로 스마트 컨트랙트다. 스마트 컨트랙트는 서명된 개인의 진술을 기반으로 한 알고리즘을 결정론적으로 실행하는 컴퓨터 코드라고 볼 수 있다. 컴퓨터 알고리즘은 일관적이어야 하며 동일한 재산에 두 명의 소유자를 배정할 수 없어야 한다. 스마트 컨트랙트로 표현될 수 있는 모든 것은 명의 이전으로서의 계약 이론과도 호응한다. 컴퓨터 코드로 표현될 수 없다면, 그것은 유효하지 않거나, 논리적으로 정합하지 않은 컨트랙트일 확률이 높다. 스마트 컨트랙트를 집행함에 있어서 법원은 스마트 컨트랙트가 지시하고 있는 물리적 재산이 스마트 컨트랙트에 기재된 소유자의 통제 하에 있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스마트 컨트랙트의 스마트함은 이것이 소프트웨어 코드로 표현되어서가 아니다. 이제부터 명의 이전으로서의 계약 이론과 호응하는 모든 계약을 스마트 컨트랙트로 부르기로 하겠다.

이제 로스바드가 어떻게 약속으로서의 계약 이론의 함정에 빠지게 됐는지 살펴보자. 1,000달러를 빌려 1년 안에 1,100달러를 되갚기로 한 약속을 사례로 드는 과정에서 로스바드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의 책 <자유의 윤리학>을 일부 발췌한다.

스미스와 존스가 계약을 한다고 해보자. 스미스는 지금부터 1년 후 1,100달러를 갚겠다는 내용이 담긴 차용증을 존스로부터 받고, 존스는 스미스로부터 1,000달러를 받는다. 전형적인 채무 계약이다. 스미스는 자신이 소유한 1,000달러에 대한 명의를, 1년 후 1,100달러를 갚겠다는데 동의한 존스에게 양도한 것이다. 약속된 날짜가 찾아왔지만, 존스는 돈을 갚을 의사가 없음을 알려온다. 이 때 자유주의 법률 상, 존스가 스미스에게 돈을 되돌려줘야 한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기존의 법률은 존스가 "“약속”"을 했으며, 이 약속 때문에 스미스의 마음속에 "“기대”"가 형성됐으므로 존스가 스미스에게 1100달러를 되돌려줘야 한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우리의 주장은, 약속만으로는 재산 명의의 이전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약속을 지키는 것이 도덕적으로는 옳은 일이겠지만, 도덕성의 강제는 자유주의 체제의 법의 기능(예. 합법적 폭력)과는 무관하다. 존스가 스미스에게 1,100달러를 돌려줘야 하는 근거는, 존스가 이미 자산의 명의 이전에 동의했고,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가 스미스의 재산을 훔친 절도범이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 스미스가 처음 존스에게 1,000달러에 대한 명의를 이전한 것은 그 자체만 떼어놓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1년 후 존스가 1,100달러를 갚는다는 조건에 결부된 것이므로, 이 돈을 갚지 않는다는 것은 스미스의 적법한 재산에 대한 명백한 탈취 행위인 것이다.

로스바드의 실수가 여기서 드러난다. 조건이 만족되기 전까지 명의는 이전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존스는 애초에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1,100달러에 대한 명의의 이전에 동의할 능력이 없다. 존스가 스미스로부터 조건부로 양도 받은 1,000달러를 처음부터 다 써버리고자 했던 것이라면, 그 조건은 1,000달러에 대한 선취권(lien)일 것이다. 만약 존스가 그 1,000달러를 앨리스로부터 노트북을 사는 데 썼다면, 그는 그 1,000달러에 대한 정당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먼저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 스미스에게 1,100달러를 갚지 않았기 때문이다. 앨리스는 스미스에게 돈을 갚지 않는 존스의 신용 리스크를 부담해야 하므로, 노트북의 명의 이전이 회수된 돈에 대한 선취권 획득 여부에 따르도록 만든다. 존스가 1년 내에 스미스에게 1,100달러를 갚지 못한다면, 스미스는 자신이 존스에게 빌려줬던 1,000달러에 대한 명의를 유지하는 것이고 앨리스는 노트북에 대한 명의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서 노트북을 내놓지 않는 존스는 절도죄를 범하는 것이고, 1,000달러를 내놓지 않는 앨리스 역시 절도죄를 범하는 것이다. 100달러라는 이자는 1,000달러의 명의 이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조건으로서만 존재하는 집행 불가능한 약속이다. 상이한 약속들에 의해 조건지어진 돈의 명의는 대체 불가능(non-fungible)하다. 다시 말해 저당잡힌 자산을 돈으로 사용할 실질적인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스마트 컨트랙트 하에서 대출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당신과 은행간의 계약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요구되는 월별 지불액이 지불되지 않는다면 집에 대한 명의가 은행으로 이전된다. 여기에 약속된 것은 없다. 그저 당사자가 명백히 명의를 가진 자산에 대한 사전 규정된 이전 조건만 존재할뿐이다. 보통, 상환 은행 대출(recourse bank loans)은 은행이 집을 팔 수 있는 금액과 당신의 대출 잔액 사이의 차액에 대해서도 당신에게 지불 의무를 부여한다. 이 조건은 타당하지 않다. 명의 이전 조건을 합의하기 위해서는 계약의 대상이 되고 있는 모든 자산이 계약 체결 시점에 모두 당사자들에 의해 소유된 상태여야 하기 때문이다. 집을 살 만큼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므로, 대출자는 현금의 명의 이전에 대한 계약에 서명할 수 없다. 여기서 현금을 지불하겠다는 모든 약속은 집행될 수 없다. 이러한 약속은 스마트 컨트랙트 컴퓨터 코드로 실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비상환 담보부 대출(non-recourse collaterallized loans)만이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집행될 수 있다는 거다.

블록체인 상의 스마트 컨트랙트는 조건부 이전의 대상이 되는 모든 자산에 대해 명의를 가진, 자동화된 에스크로 대행업자와 다를 바 없다. 컴퓨터 코드가 계약 당사자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바탕으로 명의 이전을 통제한다. 스마트 컨트랙트는 인간 에스크로 대행업자을 통해서도 수동식으로 실행될 수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에서 한 계약의 집행은 에스크로 대행업자가 관리하는 자산의 양도에 한정되어야 한다. 계약 당사자들은, 저마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재산에 대한 선취권을 명백히 밝힐 수 있는 한, 제3자 에스크로 대행업자를 고용할 필요가 없다. 분쟁이 발생한 경우 스마트 컨트랙트를 해석하고 조건을 평가함에 있어서 제3자의 개입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따른 결정에 반하여 물리적 소유를 양도하지 않는 당사자는 절도범이 된다.

정글의 법칙 하에서는 계약 조건을 지키지 못한 경우 자신의 신체에 대한 명의마저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다. 감옥, 강제수용소에 갇히거나 고문을 당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극단적인 경우 타인에 의해 살해당하는 것까지 허용하는 계약을 맺는 것도 가능하다. 신체는 분할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 계약당 한번만 담보로 사용할 수 있다. 당신이 조건 불이행 시 신체에 대한 명의 이전에 동의하는 계약을 동시에 두 개를 맺게 되었다고 해보자. 첫 번째 계약의 당사자는 당신의 장기를 적출하고자 하고, 두 번째 계약의 당사자는 당신을 강제수용소에 집어넣고자 한다. 누군가가 당신의 신체에 대해 선취권을 가지고 있는 한, 당신은 다른 누군가에게 신체를 팔거나 다른 추가 선취권에 대한 저당물로 사용할 수 없다. 이론상으로는 가능한 계약이지만, 구성원의 독립성을 지키고자 하는 커뮤니티라면 이런 계약은 인정하거나 집행하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나는 커뮤니티가 담보를 넘어서는 상환 청구 대출은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무담보 신용 카드 대출이 포함될 수 있다. 모든 계약은 명의 이전 방식으로 체결되어야 하며, 상대를 파산할 지경으로 몰고 갈 수 없어야 한다. 파산이 가능한 것은, 계약 시점에 당사자들이 명의를 가지고 있지 않은 자산에 관해 계약이 이루어지는 경우에 한정되어야 한다. 신용 카드는 존재할 수 있겠지만, 채무 불이행 시 채권자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채무자의 신용 등급을 낮추는 것 뿐일 것이다. 이로써 채무자는 앞으로 신용 대출이 제한되겠지만, 채권자가 돈을 되찾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재산은 여러 차원을 가질 수 있다. 재산은 3차원 공간 상에 위치하지만 시간 상에도 위치하는 것이다. 다음 주에 차량을 임대하기로 계약한 경우, 이중 예약이 불가능한 이유는 그 시간의 차량 사용 명의가 더 이상 내게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다음 달 받을 돈에 대한 명의를 이전하는 것은, 실제로 다음 달 내가 그 돈의 명의를 가지기 전까지는 불가능하다. 어떤 계약이 그 계약 시점에는 존재하지 않는 자산에 대한 명의의 이전을 포함하고 있다면, 분명한 대비책이 있어야 한다. 다음 달에 1천 달러를 지불하겠다는 약속은, 내가 그 돈에 대한 명의를 실제로 가지거나, 선취권에 그 돈이 저당잡히지 않은 한 구속력을 가지지 않는다. 재산은 그 "사용권"을 어떻게 분할하느냐에 따라 무한한 차원을 가질 수도 있다.

또다른 종류의 계약인 "기밀 유지 협약서"를 살펴보자. 이런 계약서의 내용은 대개 "만약 정보가 공개되면 재산에 대한 명의가 이전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만약 이 계약서에 "정보가 공개된다면 1백만 달러의 명의가 이전된다"고 적혀 있으면 당신은 여기에 서명할 용의가 있는가? 우선, 이 계약에 서명할 수 있으려면 다른 계약에 저당잡혀 있지 않은 1백만 달러가 수중에 있어야 한다. 수중에 1백만 달러가 있고, 100년 기한의 기밀 유지 협약서에 서명했다고 해보자. 스마트 컨트랙트에서라면 당신 수중의 이 1백만 달러는 100년간 잠긴 채, 정보가 공개되어 계약 내용대로 명의를 이전시켜야 하는 경우를 제외한 그 어떠한 다른 용도로도 사용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또 다른 기밀 유지 협약을 체결하고자 할 때에는 앞의 스마트 컨트랙트에 묶인 1백만 달러가 아닌 다른 자산이 필요할 것이다. 만약 자신이 소유하고 있지 않은 자산으로 이 협약을 체결한다면 이것은 집행 불가능한 계약이다. 이 두 번째 협약의 경우, 불이행에 따른 비용은 당신의 평판(신용 등급)으로 한정된다. 현실적으로 기밀 유지 협약은 "기밀 공개 비용"에 관한 것으로 재구성되거나, 자산이 묶여 있는 기간이 단축되어야 할 것이다.

“경쟁 금지” 조항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 역시 기밀 유지 협약서와 마찬가지로, 경쟁사에 협력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다른 자산에 대한 명의를 담보로 하지 않는 한, 불이행의 비용이 평판의 훼손으로만 한정되는 무의미한 약속이다. 자산이 없는 직원은 경쟁 금지 협약을 뒷받침할 능력이 거의 없겠지만, 대형 기업의 경우는 주식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커뮤니티 평화 조약이라면 재산권과 스마트 컨트랙트를 재산에 대한 명의와 결부지어 인식해야 한다. 나아가 "해주겠다"는 약속에서는 재산의 명의가 사전 동의된 “객관적인” 조건에 따라 이전되는 방식으로 집행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내 약속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어떤 손해에 대해 내게 배상을 요구할지를 알고자 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따라서 개방형 손해(open-ended damages)에 합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합의 없이는 그 어떠한 계약도, 이를 집행하고자 하는 모든 "이름 뿐인 민주주의"도 무효이다.

스마트 컨트랙트라는 개념은 블록체인 기술이 몰고 온 가장 큰 혁신 중 하나이다. 블록체인 상에 구현된 스마트 컨트랙트는 "자동 실행"되는 결정론적 합의로서, 협박이나 폭력 없이도 집행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스마트 컨트랙트는 순수 디지털 자산에서만 사용된다. 블록체인이 그 데이터베이스에 대해 전적인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가 곧 법"이라는 사고 방식에 근거해 모든 재산권을 표현하는 것은 보다 수동적인 수단으로 스마트 컨트랙트를 집행할 유용한 프레임워크를 제공한다. 원칙적으로, 모든 합의는 모든 종류의 재산에 대한 명의 이전을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조건에 근거해 관리하는 소프트웨어 상에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 코드로 번역될 수 없는 계약은 무효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신뢰의 가치
정글의 법칙 위에서 고도의 커뮤니티를 조직하기 위해서는 신뢰가 필요하다. 신뢰가 없다면, 계약을 기록하고 집행하는 데 따르는 비용이 매우 커진다. 저신뢰 환경에서는 많은 거래가 이루어질 수 없다. 거래가 창출하는 가치보다 계약 생성에 드는 비용이 더 높기 때문이다. 평판은 신뢰에 의해 지탱되며,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평판에 금이 가 모두의 사업 비용이 올라가는 것이다. 계약법은 고가의 계약에 한정되어야 하고, 나머지 계약들은 법원에 의해 집행될 수 없어야 한다. 당신이 누군가와의 약속을 어긴 경우에도 일정한 의견만 제시할 수 있도록 법원이나 사설 중재 기관의 기능은 제한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때의 이 의견들은 공적 기록으로서 이미 당신의 다른 사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정도만으로도 계약 당사자들로서는 약속을 어기지 않아야 할 충분한 인센티브가 될 것이다.

상대 우위의 규칙(4장)과 모듈화(5장)를 통해 사회를 조직할 때의 이점은, 작은 커뮤니티에서도 신뢰를 형성하기가 쉬우며 이들 커뮤니티를 여러 방향으로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다. 신뢰는 던바의 연구 속 우리 뇌가 생물학적으로 허용하는 인간 관계의 숫자와 정비례한다.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것은 그를 안다는 것이며, 이렇게 앎으로써 우리가 직접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엔 한계가 있다. 간접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누군가를 신뢰하는 경향이 강한 사회에서는 권력의 집중화 현상이 나타나고 진정한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마주치는 사람 중 99%를 “기본적으로 믿을 수 있는” 사회는 번영할 것이며,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곤 가족이나 친구밖에 없는 사회는 침체할 것이다. 계약 상의 약속을 집행하는 데 커뮤니티 평화 조약을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미 그 사회의 신뢰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평판이 중요시되는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신뢰 기반이 너무 튼튼해서 당사자들이 서로 약속한 내용을 기억하기 위해서만 서면 계약이 필요할 것이며, 모두가 상대의 채무 불이행에 따른 무상환 리스크를 감당할 것이다. 법원에 선취권을 제출하지 않고도 대출이 이루어질 것다. 문을 잠그지 않아도, 아이들이 바깥에서 마음껏 뛰어놀아도 안전할 것이다.

신뢰를 계약으로 대체하거나, 주관적 손해에 대한 법원의 평가를 바탕으로 약속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 계약에 대한 애매모호한 평가는 평화 조약(정부) 자체가 담지하는 신뢰를 무너뜨리며, 법원에 과도하게 주관적이며 비민주적인 권력을 부여한다. 반면, 스마트 컨트랙트와 커뮤니티 법원은 신뢰가 형성될 수 있는 필수적인 기반을 마련한다. 법원의 판결이 예측가능할수록 사람들이 법원에서 다투는 시간도, 분쟁이 해결되는 데 소요되는 시간도 줄어들 것이다. 법원의 판결이 예측가능하려면 문제가 되는 계약도 그만큼 예측가능해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나는 모두가(혹은 적어도 모든 변호사가) 스마트 컨트랙트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작성할 수 있는 수준까지 명의 이전으로서의 계약 이론을 깊이 공부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린 이미 존재하는 계약 중 1%도 강제 집행할 수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변호사를 쓰는 데엔 시간당 수백 달러가 소요되지만, 그렇다고 변호사 없이 법정 공방을 준비하려면 법 공부에만 수개월씩 마련이고 법정에서도 실수를 범하기 십상이다. 만에 하나 소액 사건 재판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실제로 판결의 대가가 치러지는 건 전체 중 20%에 불과하다. 약속으로서의 계약 이론을 따르는 사회에서라면 흔히 벌어지는 현상이다. 하지만 스마트 컨트랙트의 경우, 판결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절도에 해당한다. 형사사법 체계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다.

소액 사건 재판 이상부터는 소송 비용이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한다. 나도 한 번은 사업 분쟁에 휘말린 적이 있는데, 단순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만 소송 비용으로 십만 달러가 청구되었었다. 명백한 증거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고용한 변호사들은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워했다. 결국 분쟁은 해결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수천 달러의 재판 수수료가 추가로 발생했다. 이혼 소송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산 분할을 두고 벌어지는 분쟁의 비용이 자산 자체의 가치보다 크기 십상이다. 계약의 강제 집행을 노리는 것보다 손실을 감수하는 편이 더 합리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절대 다수 계약이 집행 불가능한 계약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슬프게도 오늘날 사람들이 계약 관계에 들어서는 가장 큰 이유는 묵시적 계약의 모호성으로 인한 불필요한 법정 공방을 피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숱한 잉크를 낭비해가며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 묵시적 계약을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 명시적 계약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이것 때문이다. 거래에 뒤따르는 모든 책임과 리스크를 고객 측에서 감수해야 한다는 걸 명시하는, 이른바 이용 약관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계약은 결국 타인과의 가장 단순한 상호작용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잠재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예상치 못한 법적 배상 책임에 관한 것이 되어버렸다. 이젠 "소프트웨어 나눔"도 마음대로 못한다. 아래는 BSD 라이선스의 일부다.

<저작권자>는 이 소프트웨어를 “있는 그대로의” 상태로 제공하며, 상품성 여부나 특정 목적에 대한 적합성에 관하여 묵시적 보증을 포함한 어떠한 형태의 보증도 명시적이나 묵시적으로 제공되지 않는다. 손해 가능성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저작권자>는어떠한 경우에도 이 소프트웨어의 사용으로 인하여 발생한,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손해, 우발적이거나 결과적 손해, 특수하거나 일반적인 손해에 대하여, 그 발생의 원인이나 책임론, 계약이나 무과실책임이나 불법행위(과실 등을 포함)와 관계 없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러한 조건은 대체 재화나 용역의 구입 및 유용성이나 데이터, 이익의 손실, 그리고 영업 방해 등을 포함하나 이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이 조항은 라이선스 전문의 50%를 잡아먹고 있을 뿐더러 모두 대문자로 표시되어 있다. MIT 라이선스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스마트 컨트랙트에서는 모든 잠재적 책임과 조건이 명시적이다. 몇몇 고가의 품목이 관련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계약서 초안이 필요한 경우도 없을 것이다. "구두 계약"은 강제 집행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법원이 "묵시적 계약"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되면, 우리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무의미한” 컨트랙트의 대부분이 사라질 것이다. 스마트 컨트랙트를 기반으로한 사회는 우리의 서명을 필요로 하는 절대 다수의 "계약"을 소멸시킬 것이며, 개중 남아 있는 스마트 컨트랙트들은 대폭 간소화될 것이다.

계약의 간소화는 법원에 집중되어 있던 권력을 시민에게 되돌려주며, 이를 통해 시민은 진정한 민주주의에서 없어서는 안될, 모두가 평등한 일원으로 거듭난다. 스마트 컨트랙트가 어떻게 거의 모든 형태의 “합법화된” 금융 사기를 예방하는지에 관해서는 금융 청렴성(financial integrity)을 다루는 뒷장을 보면 더 확실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장은 나와 계약 관계로 맺어지지 않은 누군가로부터 손해를 입었을 때에는 어떻게 정의를 구현할 수 있을지에 관한 것이다.

평화 조약은 약속인가, 스마트 컨트랙트인가?
스마트 컨트랙트는 재산권에 대한 동의가 이미 존재한다는 전제 위에서 성립된다. 로스바드는 처음으로 정착하는 주민에게 재산권이 주어진다는 홈스테드 원칙에 우리가 동의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나는 사회적 권력, 물리적 힘으로 어떤 재산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에게 그 재산에 대한 소유권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재산권의 인정을 두고 합의를 볼 수는 있겠지만, 이 합의는 계약이 아니라 신뢰와 평판을 근거로 한 상호 약속이다. 그리고 이 약속은 당사자들의 정글 파워에 의해서만 집행될 수 있다.

의존 이론(reliance theory), 손상 이론(demages theory) 등 계약과 관련한 모든 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평화 조약이 재산권과 계약법을 규정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가 유지되는 것, 모두가 전쟁보다는 평화 상태를 지향하며 살아가기로 동의하는 것이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모든 계약이 평화 조약의 테두리 안에서 맺어진 약속의 집행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평화 달성을 위해 만든 약속을 정글 파워를 사용해 집행한다. 평화 조약은 명료하고, 단순하고, 지속가능해야 하며, 갈등과 도덕적 해이, 법의 오남용을 방지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평화 조약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계약에 관한 다른 모든 이론은 논리적으로 비일관적인데, 이는 이것들이 컴퓨터 코드로 표현될 수 없으며 스마트 컨트랙트의 형태로 집행될 수 없다는 점에서 증명된다. 이러한 논리적 비일관성은 갈등을 빚다가 결국에는 평화 조약의 파기로 이어질 것이다. 갈등은 누가 무엇을 가졌는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시민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아 판사에게로 집중시킴으로써 진정한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한다.

현실적으로는 모든 것이 평등하지도, 모든 종류의 평화 조약이 권장되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의 목적은 모든 당사자가 동등한 정글 파워를 가졌다는 전제 하에, 평화 조약 협상에 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문을 주는 데 있다. 모든 당사자가 동의할 수 있으며, 그 어떠한 편향에도 영향 받지 않는 합의의 형식을 제시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점에서 스마트 컨트랙트는 내가 아는 한 유일하게 논리적으로 정합하는 재산권 형식이다.

여러분은 현재의 체제가 만족스러운가? 법정에 서 본 적이 없다면, 계약이 집행될 수 있는지 여부에 목매달아 본 적도, 현재의 체제가 낳은 이 광기를 경험해본 적도 없는 것이다. 장담하건대 우리 모두가 조금만 시간을 투자해 스마트 컨트랙트의 원리와 그 힘을 체득한다면 우린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알겠는데, 혹시 이거는…
나는 많은 사람들과 계약을 진행하면서 스마트 컨트랙트 방식을 시도해봤으며, 이에 많은 피드백을 받아보았다. 우리는 계약을 약속이라고 여기는 데 너무 익숙한 나머지, 스마트 컨트랙트와 평판만으로 굴러가는 세상을 상상도 하지 못한다. "지금 이대로"도 세상은 잘 돌아가는데, 기존의 모든 사업 합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엎을 수도 있는 아이디어를 굳이 제안할 필요가 있느냐, 약속으로서의 계약이란 개념을 유지하면서도 진정한 민주주의의 원칙을 실현할 수는 없느냐는 것이 사람들의 흔한 반응이었다.

계약 상의 약속을 집행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그 약속에 재산의 성격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내가 1조 달러를 당신에게 지불한다는 약속은 당신의 장부 상의 자산이 된다. 왜냐면 내가 이 돈을 당신에게 지불하지 못한다해도 “법적으로는” 정부가 내게서 이 돈을 뜯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1조 달러를 소유하고 있지도 않으며, 그만한 돈을 벌어들일 능력도 없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이 계약을 강제 집행할 방법이 없다. 약속의 파기에서 발생한 손해는 어떤 방식으로든 배상되어야 한다. 이 약속을 가능케 하는 자산이 없다면 그 약속은 아무런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 자기 밥값을 하는 회계사라면 알이 까지기도 전에 병아리를 셈하지 않는다.

내게 있을 리 없는 1조 달러를 지불하겠다는 약속이 유효한 "계약’일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면, 이 약속은 언제부터 유효해지고, 집행가능한 것이 되는 걸까? 내 수중에 10억 달러가 있을 때부터? 1백만 달러가 있을 때부터? 아니면 1천 달러? 1달러?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거지와의 약속은 집행 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한다. 거지가 당신과의 계약 내용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 이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보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거지가 계약서에 서명을 했는지 안 했는지와는 상관없다.

계약을 약속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모래 위에 집을 지으라 부추기는 것과 같다. 이런 사회에서는 가치가 없는 것을 가치가 있는 것으로 탈바꿈시키는 사기가 횡행한다. 보험 회사는 일정한 보상 수준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한다. 특정 상황에서는 결코 지킬 수 없는 약속임에도 말이다. 이런 보험 회사들은 보험 청구의 빈도와 규모를 잘못 측정하고서는, 꼭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할 때 파산하기 마련이다. 결국 가장 크게 좌절하는 것은 이 보험사들과의 약속에 의존하고 있던 가입자들이다.

제조업자들도 제품에 대한 보증을 약속한다. 우리는 이 회사들이 개별 고객에 비해 "크고 돈이 많다"는 것만 믿고 덥썩 그 약속을 믿어버린다. 하지만 이 회사들이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제품 고장을 대비한 “자가 보험” 자본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자본은 결국 제품 가격의 인상을 통해, 다시 말해 고객으로부터 확보하는 것이다. 이들로서도 클레임과 배상 책임의 잠재적인 빈도와 규모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 기업은 고객에게 무리하게 돈을 뜯어내거나 허황된 약속을 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 모든 경우에서 기업과 고객은 모두 보증 기간이 끝나기 전까지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채로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평생 보증이란 것도 아무런 근거가 없는, 집행 불가능한 약속일 뿐이다. 평생 보증은, 기업이 그 약속을 실제로 이행하기 위한 자금을 따로 확보하지 않는 한, 그 자체로 사기에 불과하다. 시장의 과열된 경쟁과 가격에 예민한 고객들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보증을 약속하고서는 마냥 모든 것이 잘풀리기를 기도하는 것이 속편한 것이다.
은행들은 원한다면 언제든 돈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모두가 한꺼번에 몰려와 동시에 돈을 가져가겠다고 하면 그 은행은 파산할 것이다. 이런 게 어떻게 유효한 계약일 수 있겠는가? 정부는 이런 계약을 집행할 수 없고, 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1000개의 계약서에 서명했다고 생각해보자. 근데 나머지 999개의 계약을 무조건적으로 지킬 때에만 한 계약의 내용을 불이행했을 때의 손해를 보전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부분지급준비제도 이것과 하등 다를 것 없다. 당신이 계약상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경우 당신에겐 손해를 배상할 능력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리스크를 상대측은 인지하고 있는가?

약속으로서의 계약 이론에서도 계약은 당사자들의 동의를 통해서만 유효한 것으로 간주된다. 계약에 동의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약속 불이행이 상대에게 어떤 "손해"를 입힐지, 법원에서 그 손해액을 사후적으로 "평가"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어디까지 배상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모르는 계약에 대해 애초에 어떻게 동의할 수 있냐는 것이다. 계약서에 명시된, 혹은 법원이 판결을 내린 배상액을 지불할 능력이 내게 없다면, 정부라고 별다른 수가 있을까? 한쪽은 조건에 동의할 수 없고, 다른 한쪽은 손해를 배상 받을 수 없을 테니 이러한 "계약"은 무효일 수밖에 없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시민의 협업과 신뢰 구축을 촉진한다. 약속 불이행는 신뢰의 상실을 의미한다. 우리 모두는 책임 있게 누구를 신뢰할지 결정하고, 잘못된 신뢰의 결과로 발생한 비용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약속을 근거로 한 계약이 커뮤니티의 정글 파워를 통해 집행되는 것을 허용한다면 우리는 엄청난 도덕적 해이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잘못 신뢰해서 발생한 막대한 비용을 이 두 당사자를 제외한 모두가 부담하게 되리란 것이다. 그 결과 사회 구성원들은 신뢰되어서는 안 될 사람을 신뢰하기 시작한다.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집행 가능한 계약이라는 환상을 신뢰하기 시작한다.

신뢰하지 않는 사람과는 절대로 거래해서는 안 된다. 신뢰가 부족한 사회라면,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집행 가능한 계약을 명문화해야 한다. 그리고 계약상의 약속이 위반됐다면, 여기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약속 위반 사실을 알리는 것뿐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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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 Smart Contracts : :+1: :+1: :+1: :+1: :+1: :+1: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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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신뢰, 계약, 스마트 컨트렉…
이 글을 읽지 않았다면 깊게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을 것 같습니다…
깊이 알지 못하고 eos 를 가지고 있었는데, 점점 eos 에 매료되는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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